ⓒ뉴시스지난 5월26일 SK 이만수 코치(위)가 홈구장 만원 이벤트로 벌인 ‘팬티 행진’ 퍼포먼스는 야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주었다.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는 숨 가쁘게 올 시즌을 달려왔다. 정규 시즌이 막판으로 접어든 9월11일 현재 SK는 2위 두산 베어스를 다섯 게임 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규 시즌 1위의 전리품 격인 한국 시리즈 직행은 거의 굳어졌다. SK는 2003년 딱 한 번 한국 시리즈에 올라간 적이 있다. 6차전에서 현대 유니콘스 에이스 정민태에게 0-7 완봉패해 준우승이 확정된 직후 SK는 ‘행복한 2등’이라는 문구로 신문 광고를 했다. 2000년 창단 뒤 첫 포스트 시즌 진출이었다. 그때는 2위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SK는 올해 ‘행복한 2등’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올해 가을은 그들에게 특별하다. SK의 선전을 ‘인천 야구’ ‘스포테인먼트’ ‘전원 야구’ 등 세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보았다.

SK 와이번스의 연고지인 인천은 이상적인 프로야구 프랜차이즈다. 인구는 2백60만명으로 전국 광역시 가운데 두 번째로 많다. 인천에서 처음 야구 경기가 열린 때는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동산고와 인천고는 유서 깊은 야구 명문고다.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스·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는 팬들에게 실망과 안타까움을 주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대신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한동안 야구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던 인천이 올해는 SK 와이번스의 선전으로 프로야구의 유일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올해는 오랫동안 2류 프랜차이즈였던 인천이 명문 구단의 연고지로 바뀌었다.

신영철 구단 사장은 지난해 10월 ‘스포테인먼트(Spotainment)’라는 구호를 꺼내 들었다.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다. 신 사장은 “지금까지 프로야구 구장은 평양의 능라도경기장과 비슷했다”라고 말했다. 팬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새로운 팬들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프로야구는 죽는다는 위기감이다. 영화 〈괴물〉이 1백55억원을 써서 불러 모은 관객이 1천3백만명이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은 연간 1천6백억원을 들여 관중 3백만명을 유치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적=관중’이라는 등식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는 2년 연속 정규 시즌과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구구장 관중 수는 1982년 창단 이후 역대 네 번째로 적었다.

스포테인먼트는 다른 의미로는 성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SK는 올 시즌 그렇게 하고 있다. 팀은 시즌 내내 1위를 독주했다. 문학구장 관중 수는 9월11일 현재 62만4천여 명이다. 전년 대비 100% 증가했다. 시즌 전 목표였던 50만명을 크게 넘어섰다. 7월15일에 벌써 역대 인천구단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SK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7월6일 문학구장 관중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설문에서 15%가 “이날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다”라고 응답했다. 또 야구장을 찾는 이유에 대한 응답은 ‘홈 팀의 성적’과 ‘야구장에서 느끼는 재미’가 절반씩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시민들이 프로 스포츠 외에 여가를 즐길 대체재가 많다. 이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SK는 올 시즌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한 결과, 성과를 냈다. 이를테면 지난 5월26일 이만수 코치가 홈구장 만원 이벤트로 ‘팬티 행진’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신 사장은 스포테인먼트의 주창자답게 한국시리즈의 의미를 “팬들에게 줄 수 있는 큰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갈증을 숨기지는 않았다. 신 사장은 올 시즌 자기 회사의 실적에 80점을 줬다. 하지만 올해는 1단계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는 “창단 이후 첫 우승이 2단계로 올라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스포테인먼트’라는 단어가 처음 언론에 보도된 때는 지난해 10월 김성근 감독 영입 직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역대 프로야구 감독 가운데 김성근의 이미지는 ‘엔터테인먼트’와는 가장 거리가 멀 것이다. LG는 ‘세련된 팀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가 팀을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직후 사실상 해고하기도 했다.

훈련, 또 훈련으로 선두 자리 지켜

 

ⓒ뉴시스올 시즌 SK가 팀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오른쪽)은 호쾌한 야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SK 야구에는 ‘재미없다’라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호쾌한 맛이 없는 소극적인 야구, 시간을 질질 끄는 지루한 야구라는 비난이다. 시즌 중반 빈볼 시비가 일었을 때는 ‘비겁한 야구’라는 말이 비난 목록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실제 SK의 야구는 이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SK는 유일하게 세 자릿수 홈런을 쳐낸 팀이다. 두산·LG와 팀 도루 1위 자리를 다투는 스피드도 자랑한다. 과연 소극적인 야구일까. 물론 SK는 가장 많은 구원투수를 등판시키는 팀이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비난은 온당하지 않다. 9월11일 현재 경기 시간이 가장 긴 구단은 LG(3시간32분)이다. SK는 3시간21분으로 현대와 공동 3위다. 전체 평균 3시간20분과 큰 차이가 없다. 빈볼 시비에 대해 1루수 이호준은 “똑같은 상황에서 SK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라고 하소연했다. 신 사장은 “스타가 없는 야구단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재미없는 야구라는 평가는 너무 주관적이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SK 와이번스 타격코치 오타 다쿠지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18년 동안 현역 생활을 했다. 1969년 데뷔한 니시테쓰 라이온스는 퍼시픽 리그의 만년 하위 팀이었다. 그러나 세이부 그룹이 구단을 인수한 뒤 1980년대에는 최강 팀으로 변신했다. 오타 코치는 이 과정에 대해 “히로오카 다쓰로 감독의 역할이 가장 컸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성근과 히로오카의 공통점을 “첫째, 11월부터 강한 훈련을 시킨다. 둘째, 훈련을 소화해내는 선수들을 거느리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오타 코치는 강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올해 SK는 뚜렷한 주전이 없는, 이른바 ‘전원 야구’로 1위를 독주했다. 김 감독은 이런 야구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을 “훈련으로 만들어놓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최민규 (SPORTS 2.0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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