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아고라에서 활동하는 ‘아고리언’들은 ‘쇠고기 재협상’만 외치는 대책회의가 답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가두시위를 시작하며 구호를 ‘이명박 타도’로 바꾸었다.
“당신, 다음 아고라 ‘단체’하고 무슨 관계요?” 지난 5월27일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된 촛불집회 참가자에게 경찰이 던진 실제 질문이다. 연행자는 황당함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어 경찰은 말한다. “아고라가 촛불집회의 온상지이고, 주동자들이 모여 있어서 묻는 것이다. 상부 지시가 있었다.” 45시간 만에 유치장에서 풀려난 이 참가자는 인터넷 방송 〈라디오21〉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심문 내용을 공개했다. 이를 들은 네티즌은 다음 아고라에 ‘아고라 당’을 창당한다는 글을 올리며 경찰을 조롱했다. 경찰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발해 광장으로 나가자는 글이 올라온 곳도, 거리행진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온 곳도 다음의 아고라다. 아고라가 정말로 촛불집회 배후 세력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아고라와 ‘가상 인터뷰’를 시도해봤다.

아고라 씨, 반갑습니다. 요즘 바쁘시겠습니다. 피곤해 죽겠습니다. 네티즌이 밤낮없이 찾아오니 쉴 수가 있어야죠. 제가 2004년 12월 ‘다음’에 취직했는데 그때는 이럴 줄 예상도 못했습니다. 대통령선거 전후로 수시로 저를 찾는 네티즌이 늘었습니다. BBK 파문, 영어몰입 교육 등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네티즌은 자기 생각을 저한테 털어놓고, 또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글이 평균 1만2000개씩 올라왔죠. 요즘에는 방문자가 대선 때보다 여섯 배나 늘었습니다. 아고라 씨를 찾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이신가요? 경찰도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학생, 직장인, 주부 등 다양하죠. 386도 많아요.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 비해서는 점잖은 분들이 오십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글을 쓰거나 생뚱맞게 말장난하면 사람들이 상대 안 해요. ‘네이버 초딩’과는 다르다나 뭐라나…. 어쨌든 생산적인 토론을 한다고 자부심을 느끼세요. 그러니까 주목되는 콘텐츠가 나오는 거겠죠.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허허, 부끄럽게도 콘텐츠는 오시는 분들이 다 만들어주십니다. 저는 공간만 제공하고요. ‘MB 퇴진 서명운동’했다고 잡혀간 고등학생 ‘안단테’ 아시죠? 안단테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기에 제가 하루 만에 30만명에게 서명을 받아줬죠. 닷새 만에 130만을 돌파하면서 이슈가 되니까 경찰이 조사에 나서더군요. 안단테가 잡혀가니까 이번에는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자는 청원이 올라왔어요. 제가 모금 게시판도 열어줬습니다. 결국 안단테가 풀려났죠. 김이태 박사는 저한테 제보를 했어요. 정부가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할 자료를 만들어내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저는 제보받으면 즉시 다 공개합니다. 폭발력이 대단하더군요. 유명 언론이 저를 찾아와서 기사 쓰게 글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글을 본 다른 네티즌의 반응도 기사가 되더군요. 예전 같으면 사람들이 유명 언론사에 제보를 하고 기자와 편집국의 손을 거쳐 대중에 알려지거나 감추어지거나 하는 과정을 거쳤을 텐데 말이죠. 이후에 김 박사를 지키자는 청원이 들어왔기에 제가 사흘 만에 서명을 4만5000개 받아줬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기업들이 요즈음 제 눈치 많이 봅니다. ‘조·중·동 불매 운동’을 봐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어요. 이런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늘 있었지만 예전에는 단순히 ‘보지 말자’는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잖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저를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합니다. 일단 ‘조·중·동 절독’에 대한 대안으로 ‘한겨레·경향 구독 운동’을 해요. 경향신문 정기구독이 하루에 500부 가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기업 리스트를 만들어 다 같이 항의 전화를 걸어요. 불매 운동도 하고…. 기업들이 결국 광고를 내리죠. ‘르까프’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서 오히려 ‘국민 기업’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촛불시위 주동자라는 말도 들으시던데….

저를 찾아오는 ‘아고리언’ 전체를 놓고 보면 그런 면이 있어요. 촛불시위를 시작한 것도 그들이고 요즘은 가두시위까지 벌이고 있으니까요. 아, 아고리언은 저한테 수시로 찾아와서 글 쓰고 댓글 다는 네티즌을 말합니다. 뭐 제 열성 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가두시위는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청계광장이나 서울광장 촛불집회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 주최합니다. 근데 그분들이 외치는 구호는 ‘쇠고기 재협상’밖에 없어요. 그걸 본 아고리언들이 답답했던 거죠. 이명박 정부의 전체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데 아직도 쇠고기니…. 그래서 ‘이명박 타도’를 외치자며 거리로 나서더라고요. 사실 아고리언하고 대책위는 사이가 안 좋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촛불집회에는 참여 안 하고 아고리언끼리 매일 저녁 7시 광화문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서 거리행진만 하고 있습니다.

열성 팬들이 밤에 거리로 나가면 웹에 남아야 하는 아고라 씨는 외롭지 않나요? 항상 서버 폭주인데 그럴 틈이 있나요? 하하. 그런데 사실 좀 소외당한 기분도 들고 밖의 상황도 궁금하고 해서 저도 시위에 데려가달라고 친한 아고리언을 졸랐어요. 그분들이 사비 털어서 깃발 만들고 저를 깃발에 태워 세상 구경 시켜주셨죠. 5월31일 밤 기억하세요? 그날 자정이 가까워져서 청와대 근처 삼청동 입구에 도착했어요. 전경들하고 대치 중인 시위대 사이를 지나는데 모두 다 제 이름 ‘아고라’를 연호하는 거예요. 마치 ‘믿을 건 너밖에 없다’는 뉘앙스랄까. 그때 저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어깨에 힘주고 있다가 바로 물대포 맞았죠. 저체온증으로 고생 좀 했습니다.

아고라 씨에 대한 신뢰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를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은 서로 통제가 안 돼요. 각자 생각을 말하고 뜻이 맞으면 함께하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거든요. 애초에 배후 세력이 있을 수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개인’은 그 세력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고리언들을 ‘선동’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선동’하려는 사람은 종종 나타나는데 아고리언들은 절대 선동되지 않아요. 굉장히 거부감을 드러내죠.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정부나 경찰의 ‘프락치’로 몰리기도 합니다. 한 운동권 출신 386은 자기 말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서 다른 아고리언과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했죠. 386 눈에는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지 않는 아고리언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부 동등한 개인으로 의견을 갖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요. 아고리언 모임에서 드물게 신뢰받는 사람이 기껏해야 배성용씨 정도예요. 국회 앞에서 쇠고기 수입중단 요구하면서 단식도 했던 분이죠. 시위 현장에서 보면 이분 말씀에 따라 아고리언이 움직여요. 근데 배성용씨도 시위를 ‘선동’하는 건 아니에요. 앞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취합해서 알려주는 것뿐이죠. 그렇다고 모든 아고리언이 그분하고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아고리언은 각자 의견을 존중하니 뜻이 맞는 아고리언끼리 따로 뭉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입니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장관 고시가 나던 5월 26일이요. 예정된 고시 시간이 오후 4시였는데 그 전후로 글을 올려달라는 네티즌이 초 단위로 몰려왔어요. 댓글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다 쓰러지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그날은 버텼어요. 문제는 6월2일 밤 11시쯤이었는데…. 그러니까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대하고 대치하던 날 있잖아요. 그때는 아예 1시간 정도 의식을 잃었습니다. 속된 말로 ‘뻗어’버린 거죠. 방문객이 많아서 서버가 감당을 못했거든요. 근데 네티즌이 ‘의혹설’을 제기하더군요. 정부에서 시끄러우니까 저를 매수했다는…. 그런 말 들으니 쉬지도 못해요. 요즘에는 서버 40대 쓰면서 ‘밤샘 근무’합니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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