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황탄은 지난해 말부터 우리 센터에서 근무하는 베트남인이다. 그는 최근 고국을 다녀왔다. 몇 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부모·형제·자매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지난 5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베트남 젊은이 고 웬반탄의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러 갔기 때문이다. 그는 베트남에 갈 때 웬반탄의 자살에 관한 자료를 가져갔지만 그의 가족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웬반탄의 부모는 왜 자기 자식이 죽었는지 직접 한국을 방문해 확인하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황탄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레황탄이 우리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 사망 사건이 매달 두 건 정도 발생했다. 하지만 대부분 산재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망한 웬반탄은 2000년 5월17일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불법체류자다. 그가 죽기 전까지 다닌 회사는 다른 곳에 비해 일하기가 수월했고 월급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비록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지만 그는 매일 열심히 일하며 특별한 부침 없이 살았다.

그런데 자살하기 직전인 5월10일, 베트남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던 웬반탄은 친한 친구에게 100만원을 빌리며 이런 말을 했단다. “나 멀리 가고 싶어….” 그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넌 알 필요없어”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보통 쉬는 날에 동료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는 것과 달리 지난 5월11일과 12일 연휴 때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13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자기 머리에 못 박는 기구인 탄환총 33발을 발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웬반탄 씨가 쓴 유서.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정작 미안해할 당사자는 한국 정부

그가 자살할 때 깔아놓은 박스 위에는 “미안해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자살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레황탄은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점점 심해지는 현실, 그리고 베트남에 돌아가도 아무런 미래가 없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웬반탄이 자살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최근 정부는 5~7월을 불법체류자 집중 단속기간으로 정하고 경찰과 합동으로 강력한 단속을 벌인다. 웬반탄이 일하던 공장에서도 얼마 전 이주노동자 몇 명이 붙잡혀 간 탓에 그의 불안감은 더욱 컸다. 그렇다고 웬반탄이 자진 귀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웬반탄이 부치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베트남 가족은 그의 귀국을 바라지 않았다.

레황탄은 그가 왜 “미안해요”라고 적었는지 이해가 된단다. 웬반탄이 자살함으로써 그의 가족이 무척 힘들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레황탄은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며 무척 속상해했다. 그러나 레황탄은 “정말 미안해야 할 당사자는 웬반탄이 아니라 집중 단속을 펴는 한국 정부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비록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8년 동안 묵묵히 공장에서 일한 웬반탄이 한국 사회에 무슨 손해를 끼쳤기에 저토록 쓸쓸한 죽음을 맞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최근 레황탄은 한 독일 교수로부터 “독일에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집중 단속이 없다. 불법체류자는 독일인이 하기 싫어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가정부로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레황탄은 한국 정부가 언제쯤 자기 같은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여겨줄지 궁금하다.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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