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국 언론의 최대 화두는 이라크였다. 지난 수년 동안 이라크는 미국 언론들의 사실상 밥줄이었다. 작은 단신일망정 이라크 관련 기사가 없는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는 위기의식에서부터 소소한 가십성 기사에 이르기까지 이라크는 미국 언론들의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2007년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이라크는 이제 과거 일이 되어버렸다. 언론은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지가 더 궁금해진 것이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줄서기는 덜하나 미국 언론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직·간접으로 드러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드디어 2007년 2/4분기 들어 대통령 선거 관련 보도가 이라크 전을 보도한 기사를 압도했다.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폐광보다야 글거리가 쏟아져나오는 금광이 더 좋은 법이다. 더욱이 이번 선거는 신구, 흑과 백, 남성과 여성. 이분법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깃거리는 거의 망라하고 있으니 언론으로서는 살맛이 난 셈이다.

ⓒReuters=Newsis미국 언론은 공화당 톰슨 상원의원(오른쪽)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 최근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힐러리도 오바마도 아닌 프레드 톰슨이다. 우리에게는 〈Law & Order〉의 배우로 기억되는 그가 공화당 표식을 달고 대통령 후보군에 합류한 것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는 이미 다른 주요 후보자들에 비견될 만한 정치자금을 모았다. 그것도 대부분 온라인에서 모금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대중적 지지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력이 심상치 않다.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로비스트 경력에다 미국 상원의원이었으며, 또 배우이기도 한 인물이니 말이다. 연기를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견지했던 인물이기에 그의 출마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톰슨 의원을 대선 보도의 양념으로 이용

대중적 지지와 인지도. 거기에 톰슨이 언론의 눈길을 끄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대역전극의 주인공.’ 이것이 그가 가진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1994년 상원 선거 때 그는 테네시 주에서 무려 20여 년 동안 상원의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짐 쿠퍼를 이겼다. 그것도 초기 조사에서 무려 20% 포인트 처진 상황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후발 주자이지만 그 폭발성과 잠재성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기존 공화당 후보로는 민주당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는 신문 보도 횟수에서도 알 수 있다. 굳이 숫자를 들이대자면, 지난 2/4분기 동안 언급된 횟수로 보면 힐러리 클린턴이 262번, 존 에드워즈가 178번, 버락 오바마가 332번 신문에 언급된 반면 공화당의 줄리아니는 124번, 롬니는 124번, 매케인은 123번이었다. 그런데 톰슨은 109차례 신문기사에 나왔다. 신문 보도 횟수로만 보면 공화당의 유력 후보군에 합류한 것이다. 힐러리나 오바마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후보니, 일종의 언론  검증이라는 차원에서도 언급 횟수가 많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톰슨이 이 정도 대접을 받는 것은 경이에 가깝다.

그러나 과연 톰슨이 그만큼 중량감이 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있다. 시민단체들이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톰슨은 가장 게으른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발의한 법안도 거의 없고, 능동적으로 사안을 만들고 추진한 적도 없다는 것이 톰슨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 그가 왜?
언제부터인가 언론 보도도 소설이나 영화의 기승전결 구조를 따라가고 있다. 중요도나 가치를 떠나 재미와 반전에 집착하는 것이다. 톰슨이 주목되는 것도 그가 언론이 생각하기에 대통령감이어서가 아니라 기승전결을 완성하기에, 그리고 이미 사실상 승부가 정해진 상황에서 반전과 재미를 위한 양념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한국은 아예 재밋거리로 삼을 인물(대선 후보)마저 없다. 그러다 보니 대선의 주요 이슈보다는 아예 다른 쪽에서 흥밋거리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신정아 사건’에 언론이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도 어찌 보면 그런 맥락이 아닐까.

기자명 조영신 (미디어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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