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주민번호 형식입니다.” 이 말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인터넷 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할 때 보는 경고문이다. 이 짧은 말이 외국인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한국을 떠나게 만들 수도 있다.

수업을 듣다 보면, 강의와 관련한 정보나 과제 내용을 교수님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 올릴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번 학기에 수강 중인 ‘현대기업경영’이라는 과목은 수업과 별도로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운영한다. 이곳에는 강의 자료와 시험 정보 등 중요한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 포털사이트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가입이 불가능하다. 외국인 등록번호도 무용지물이다. 내가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원에 가입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런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국 경제를 연구하는 학회 회원과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설립한 홈페이지에 외국 학생이 가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는 SBC(중국전략경영학회)에서 중심적인 일을 하는 회원이지만, 홈페이지에 가입할 수 없어서 자료를 게시하지 못한다. 또 나는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싶어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현대의 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가입해보려 했으나, 주민등록번호라는 장벽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들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을 주창한다.

포털사이트 가입하려면 ‘불법’ 저질러야

공부와 연구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지 못해 겪어야 하는 불편은 많다. 유명 쇼핑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바람에 물건을 구매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나는 홈플러스나 이마트처럼 큰 유통회사를 이용하는 외국인이 적립카드를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적립카드를 발급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친절한 한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빌려주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것은 불법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제대로 된 인터넷 생활을 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주민번호 대신 다른 특정 고유번호(아이핀)를 쓰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 아이핀 번호를 얻는 것 역시 외국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한국이 IT(정보통신) 강국이라고 자랑한다. 서울이 세계 최초의 IT 도시를 꿈꾼다는 말도 들었다. 이런 나라가 왜 사이트 가입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놓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른 나라는 이렇지 않다. 중국의 대표적 포털 검색 사이트인 시나닷컴(sina.com)이나, 바이두닷컴(baidu.com), QQ닷컴(qq.com) 등에서는 국적에 상관없이 주소·성별·이름·비밀번호만으로 자유롭게 회원에 가입하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 특정한 신분 고유번호를 입력하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어떤 사람은 주민번호나 아이핀 번호가 없으면 익명을 쓰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유럽 네티즌이 한국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 방편으로는 외국인 등록번호를 받는 사이트를 늘리거나, 단기간 체류하는 외국인을 위한 임시 외국인번호를 부여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한국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자만 외국인 등록번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으로는 주민등록번호든 외국인 등록번호든 아이핀이든, 특별한 고유번호 없이도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기자명 셰이저 (고려대 국제학부·중국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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