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미래〉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비아북 펴냄
제국이란 무엇인가? 군사적·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쌓아 세계를 지배했던 극소수의 사회, 패권을 휘두르는 초강대국이다. 그러한 제국의 조건은 첫째, 그 나라 권력이 동시대 경쟁국의 권력을 분명하게 능가해야 하며 둘째,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군사력 혹은 경제력을 갖고 있어야 하고 셋째, 특정 지역을 넘어 지구상의 방대한 구역과 방대한 인구에 대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고대 로마, 몽골 제국, 오늘날 미국이 대표적이다.

제국의 이러한 하드웨어적 조건 외에 소프트웨어적 조건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성공한 제국은 그 시대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관용적이었다. 관용은 인종·종교·민족·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제국의 관용이 반드시 보편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영제국 건설기 영국인은 스코틀랜드인은 받아들이면서도 아일랜드인은 배제했다. 또한 제국의 관용은 존중과는 다르다. 비록 타자를 받아들이더라도 그 타자를 존중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전세계 패권을 장악하려면 기술·군사·경제 등 여러 면에서 가장 앞서야 하는데, 한정된 공간이나 민족 내에서 그 모든 면의 첨단을 성취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지역과 민족을 뛰어넘어 다양한 인재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이 제국 문턱까지 가려다 실패한 까닭도 이러한 동기 부여의 실패, 즉 관용의 실패에 있다. 그렇다면 제국이 몰락하는 원인도 관용의 실패에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는 오늘날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이러한 잣대를 들이댄다.
 
9·11 이후 ‘군사 제국주의’로 변신

종교의 자유, 이민자 수용, 인종과 민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사회, 이러한 것들이 건국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제국으로서의 미국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우수한 이민자의 노동력과 재능은 서부 개척부터 산업의 급성장, 세계대전 승리로 이어지는 미국의 영광을 이끌었다. 여기에 소련 붕괴와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첨단기술 분야의 압도적 우위는 1990년대 이후를 미 제국의 정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저자는 2001년 9월11일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9·11 사건 이후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수호를 명분으로 과거 대영제국과 비슷한 군사적 제국주의로 변모해갔다. 징후는 다양하다. 이민자에 대한 문호가 예전 같지 않다. 국제범죄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교토의정서를 외면한다. 유엔 승인이나 주요 동맹국의 지지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관용 없는 제국의 몰락이 역사의 정리(定理)라면 미국은 정점을 지나고 있다.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제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딜레마다.

그렇다면 차기 제국 후보는? 많은 사람이 전망하듯 저자도 중국·유럽연합·인도를 거론하지만 중국과 유럽연합은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가 목격한 중국의 민족주의·순혈주의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한계다.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라도 하듯 이슬람을 두려워하고 이민자를 배척하려는 유럽연합도 한계가 분명하다. 저자는 인종적·민족적·종교적·문화적 관용만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수십 개 언어와 수천 개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가 차기 제국 후보로 주목할 만하다고 주장한다.

ⓒAP Photo9·11 사태 이후 미국은 ‘성공한 제국’이 갖춰야 할 관용을 잃었다.
물론 저자의 이러한 관측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근거는 많다. 예컨대 다원주의와 관용이라는 조건만을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저자가 일종의 환원주의나 단순화의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도 가능하다. 명실상부한 다극 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비판적 독서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관용적’이며 또한 매력적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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