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공상자들은 병원에서 쫓겨나는가 하면 조직으로부터 강제 면직을 당하기도 한다.
“최 경사, 나야, 진천서장이야. 어서 일어나서 근무하러 가야지!”
“여보, 서장님 오셨어요. 어서 인사해야죠··· 봐요, 경례하려고 손 움직이는 것 보세요.”
홍동표 진천경찰서장이 그의 팔을 움켜쥐고 세차게 흔들었다. 행여 손끝 하나라도 움직일 리 만무하지만, 아내의 눈엔 남편이 경례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벌써 4년째, 병상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그다. 
10월4일, 충북 진천군 성모병원 506호실. 진천경찰서 이월지구대에서 근무했던 최종우 경사(55)가 병상에 누워 있다. 공무상 부상을 당한 그는, 이른바 ‘공상자’다.
2004년 3월24일 밤, 최 경사는 술에 취해 차도를 활보하는 시민을 피신시키다가 무면허 운전자의 차에 치어 큰 부상을 당했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두개골의 3분의 1이 함몰된 채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다.

지난 4년 동안 최 경사의 아내 백창순씨는 여러 차례 병원을 옮겨 다녔다. 청주로, 대전으로, 다시 진천으로···. 그들이 ‘병원 순례’를 다니는 까닭은 좀더 좋은 시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수시로 가래와 대변을 빼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이 싫어해서 특실을 쓸 수밖에 없어요. 교통사고라 그런지 차만 타면 경기를 일으키는 바람에 병원을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국가유공자인 최 경사는 대전에 있는 보훈병원에 입원하면 병원비가 거의 무료이지만, 가족들은 보훈병원에 입원하길 원하지 않는다. 왕복 5시간이 걸리는 진천에서 대전 신탄진까지 거리도 거리이지만, 보훈병원의 의료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훈병원은 의료시설이 낙후됐을 뿐 아니라, 입원 환자들이 많고, 간병도 힘들기 때문에 환자  상태가 아주 나빠지더군요. 차라리 제가 벌어서 간병인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진천으로 병원을 옮긴 겁니다. 이러다 또 상태가 안 좋아지면, 청주나 대전의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경찰병원이나 보훈병원이 무료라고는 해도 제겐 빛 좋은 개살구죠.”

최 경사 가족의 월 소득은 보훈처에서 받는 1급 유공자 연금 300여 만원과 아내가 교복점을 운영하면서 버는 200여 만원을 합친 500만원가량이다. 언뜻 보면 많은 돈 같지만, 매달 간병인에게 200만원, 병원비 200만~300만원을 지불하고 나면 세 식구의 생활은 빠듯하다. 더욱이 국가유공자가 되기 전 3년간은 별다른 지원 없이 의료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항목의 치료 비용을 꼬박 다 내야 했다. 현행법상 순직자가 아닌 공상자에겐 비급여 항목을 제외한 병원 진료비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국가유공자가 되기까지도 3년이나 걸렸어요. 어처구니없게도 유공자 인정을 받으려면 보훈처의 심사기관으로 환자를 데리고 오라는 거예요. 아이 아빠는 언제 어느 때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하는지 모르는 식물인간이잖아요. 만약 심사받으러 갔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참 많이도 싸웠어요.”

경찰 3분의 1이 죽거나 다쳐

문제는 지금 있는 병원에서도 끝까지 치료를 받을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 백창순씨는 “공상자 같은 장기입원자들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되는 금액이 줄어드는 탓에 민간 병원은 공상자들을 반기지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병원을 옮기라는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보훈병원에서마저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 비하면 최 경사의 사례는 좀 나은 경우다. 2004년 6월 폭력 사건을 조사하다 피의자에게 일격을 당해 뇌진탕으로 쓰러진 장용석 경장(37)은 수소문 끝에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훈병원도 장 경장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보훈병원 측은 “대기자가 많은 병원의 여건상 장기입원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결국 지난 3월, 보훈병원을 나와 7개월째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근무연차가 짧은 장 경장은 유공자 연금도 적어 한창 자라나는 두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 등을 댈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이날 기자는 진천, 대전, 전주에서 세 명의 경찰 ‘공상자’들을 만났다. 대전 보훈병원 201호실에 입원해 있는 양훈모 경장(36·충남 예산경찰서)과 김덕성 경사(46· 전북 완주경찰서)가 그들이다.

ⓒ시사IN 안희태2003년 10월, 파출소가 지구대 체제로 전환되면서 경찰 공상자 수가 부쩍 늘었다.
이들 세 명의 경찰들은 모두 같은 해인 2004년에 사고를 당했다. 2003년 10월, 기존 파출소에서 지구대 체제로 전환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이다. 이 무렵 사고가 급증한 까닭에 대해 경찰 관계자들은 “두세 군데 파출소를 한 지구대로 합치면서 ‘현장’에서 부대끼는 경찰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한 해 800명 수준이던 경찰 공상자 수는 2004년 1088명으로 부쩍 늘어나더니 지난해엔 1399명까지 증가했다. 지난 5년간 직무 수행 중 순직한 경찰관은 132명, 공상자는 5373명이다.
이를 토대로 분석해본 결과는 더욱 놀랍다. 경찰관 한 명이 30년을 근무했다고 봤을 때 재직 중 3분의 1 정도가 사망하거나 다친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그래프 참조). 그 중에서도 특히 범인 피격, 교통사고 건수가 크게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주취자(술 취한 사람)들의 경찰관 폭행이 늘어나는 것에서 보듯 국가나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일선 경찰에게 전가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최 경사 등은 모두 ‘현직 경찰’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공상자가 700여 일 동안 완쾌되지 못하면 직권면직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찰 내규 때문이다. 최 경사나 장 경장 같은 뇌사자들은 병상에 누운 채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경찰 가족은 “공무 중 다친 것도 서러운데 직장까지 빼앗겨야 하느냐”라며 울분을 토한다.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유독 경찰은 퇴직을 해야만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박탈감을 부추긴다. 재직 중에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을 수 없도록 법령으로 못박아 놓은 탓이다.  

다른 공무원과의 차별도 심각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일반 공무원들은 재직 중 유공자 등록을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혜택은 별로 없다”라고 밝혔지만, 경찰들의 견해는 이와 전혀 다르다. 유공자에게 자녀 학자금, 취업 우대 등의 실질적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타 공무원에 비해 차별당한다는 자괴감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찰은 직무 집행과 관련한 손해에 대해선 일반 공무원과 달리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동일한 위험 직종인 군인과 달리 장해보상이라는 제도도 없다. 복지보장보험과 경찰공제회로부터 받는 돈이 일부 있지만, 이는 경찰 스스로 만든 기금이지, 국가가 보상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에선 군인과 같이 특수성을 강조하고, 보상시엔 일반 공무원과의 형평성을 내세우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대목이다.

업무와 관련해 다치거나 사망해도 공상으로 인정되기까지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해 5월에는 12시간의 도보 근무를 마치고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던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소속 김해운 경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일선 경찰들은 김 경장의 사망원인이 과로사라고 주장했으나, 공상 여부를 판단하는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판단을 유보했다. 이에 대해 수도권 경찰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근무하는 등 이례적으로 항의한 끝에야 뒤늦게 순직 처리됐다.

ⓒ영등포소방서 제공대표적 ‘위험 직종’인 소방관도 공상의 혜택을 받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
현직 경찰들은 “하위직 경찰들은 과로로 사망해도 순직 처리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라며 공상심사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시사IN〉에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공상자 인정 수는 모두 4264명, 그 중 경찰이 1339명이다. 전체의 30%가 넘는 비율이다. 현직 경찰인 김태석 박사(법학)는 “전체 공무원의 10%에 불과한 경찰 공상자 비율이 30%가 넘는다는 것은 경찰 업무의 위험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공상 심사 기준을 완화하는 등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대표적 ‘위험 직종’으로 꼽히는 소방관의 경우 경찰에 비해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높은 편이다. 기업이나 사단법인 등에서 기증하는 장학금, 후원금 등의 액수도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소방관들도 ‘공상’의 혜택을 받기까지 많은 걸림돌을 넘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순직 또는 공상 소방관이 발생할 경우 해당 소방서장이 인사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혀낸 홍미영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직속 상관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떤 직원이 스스럼없이 공상 신청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시행된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 보상에 관한 법률’도 기대와는 달리 그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재난 현장’에서의 화재 진압이나 인명구조 작업은 보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출동 과정이나 구급활동 중의 순직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화재 현장 출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와 구급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다가 중 교통사고로 순직한 경우 등 2건은 순직보상심사위원회에서 기각되고 말았다. 

이처럼 정부가 공상자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하자 결국 민간과 당사자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 10월11일, 명동성당에서 출범을 선포한 사단법인 경찰·소방공상자지원국민연대(공상연)가  그 결과물이다. 가수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서유석씨가 뜻있는 경찰, 소방관들과 힘을 합쳤다.
이사장인 서씨는 인사말을 통해 “월 1만원을 회비로 내는 경찰과 소방관 1만명을 모아 공상자들에게 지원하는 게 1차 목표이지만, 우리의 역할은 기틀을 다지는 것일 뿐, 이 일은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경찰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짭새’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권력에 기생하며 시민을 괴롭히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 스스로 ‘약자’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다.
500여 명의 경찰, 소방관들이 참석한 공상연  출범식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입구에서 팔던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책의 제목은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였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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