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소년소녀세계명작에는 ‘케사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줄리어스 시저’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불리더니 이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굳어져버린 듯하다. 표준어 규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건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덕분일 게다. 물론 이 책이 아니더라도 카이사르는 워낙 유명인이므로 많은 이가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말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고. 카이사르가 남긴 명언 가운데 가장 근사한 말은 “주사위는 던져졌다”가 아닐까 싶다. 굳이 비교하려니 약간 우습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명박 대통령도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라거나 “마사지걸을 고를 때는 못생긴 여자를 골라야 한다”라는 등 숱한 어록을 남겼다. 그렇지만 압권은 역시 “안 먹으면 되지”다.

최근 ‘뼈의 최후통첩’이라는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제이슨 본 시리즈〉를 패러디하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적극 추진하려는 정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 동영상(사진)은, 5월22일 현재 〈풀빵닷컴〉에서만 3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각종 사이트로 퍼져가는 중이다.

 ‘메모리즈’라는 네티즌에 따르면 ‘되고’송도 유행이다. “영어 몰입교육 발표했다 역풍 맞으면 취소한다 하면 되고, 대운하 추진했다 역풍 맞으면 잠깐 수그리면 되고, 이동관 언론 압박 걸리면 친구 안부 물었다 돌려대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광우병 쇠고기 수입한다 큰소리로 떠들면 되고, 검역 주권 상실했다 하면 일 터진 후에 막겠다 하면 되고, 독도에 정신 팔리면 다시 대운하 추진하면 되고.”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미국 쇠고기 개방 청문회에서 “앞으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라고 선언하자, 네티즌은 곧바로 댓글놀이를 시작했다. 간암 걸리면 술 끊겠습니다, 교통사고 나면 교통법규 지키겠습니다, 대학 떨어지고 나면 공부하겠습니다, 탄핵되면 국민의 목소리 듣겠습니다 등등. 미국과의 추가 협의 내용을 서한에 담았다고 정부 측이 발표하자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서한이 합의 문서라면 연애편지는 혼인신고서다.”

이명박 대통령의 “안 먹으면 되지”는 얼핏 들으면 카이사르의 명언과 상당히 흡사해 보인다. 통상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은 사고를 치고 나서 수습을 하기 전에 덮어놓고 내뱉는 말로,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뉘앙스를 담아 사용하곤 하니까 말이다. 허나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실제로 그때 상황이 어떠했는가 하면 역시 ‘로마 유일의 천재’ 카이사르답게 갖은 노력을 다한 뒤에 주사위를 던졌다”라고 한다. 갖은 노력을 다한 뒤에 말이다.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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