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일주일 만에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안산시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눈물을 닦으면서 길을 걷거나 길에 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학생들도 자주 목격됐다. 동료 의사들과 함께 안산 단원고 학생과 가족의 심리 치료를 돕고 있는 천근아 교수(연세대 의대 정신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총무이사)를 만났다. 천 교수는 “슬픔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잘 드러내라”고 말했다.

단원고 재학생이나 교사들의 상태는 어떤가? 교사 대다수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밤이 싫고, 업무가 과하고,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구조된 학생 절반 가까이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한 학생은 “왜 자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압력을 주는지 모르겠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안 준다”라고 말했다. 사고를 겪은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우울·불안·불면 같은 증상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증상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정상이다. 잘 견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줘야 한다.

ⓒ시사IN 조남진천근아 교수(위)는 “치료보다 ‘당신이 잘 견디고 있다’는 걸 확인해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어떤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4월20일 단원고 운동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상황에서 재학생과 학부모 300여 명이 모였다.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스스로 식순을 정하고, 자신들이 만든 희망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틀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슬픔에 빠진 어른들에 비해 훨씬 침착했다. 학생회장이 촛불을 점화하고, 불꽃을 차례차례 다음 학생에게 넘겼다. 맨 뒤 학생까지 아주 느리지만 환하게, 촛불을 켰다. 학생들의 선언은 인상적이었다. ‘감정적으로 격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밝고 명랑한 단원인으로 돌아간다’. 행사가 끝나자, 마음이 차분히 정리된 학생부터 촛불을 껐다. 눈물을 꾹꾹 밀어넣으면서 마지막 학생이 촛불을 끌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모두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깊은 슬픔을 인정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서로 교감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른들보다 어린 학생들이 오히려 더 회복력과 치유력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사IN 신선영단원고 2학년 교실이 텅 비어 있다.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쪽지가 교실마다 가득 붙었다.
대다수 학생이 죽음을 경험한 게 처음일 것이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사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아야 학생을 잘 도울 수 있다. 며칠간 과로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교사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괜찮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들이 감정에 동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슬프고 괴롭다면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숨기려고 하면, 학생들도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본보기가 없게 된다. 학생이 감정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잘 드러내기’가 필요하다. 힘든 마음을 차분히 드러내고,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 스스로 겪었던 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사가 튼튼해야 학생을 보호할 수 있다. 4월24일부터 3학년 학생들은 수업을 재개했다.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자 집에서 혼자 감정을 추스르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심리적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 집에서, 인터넷에서, 거리에서 불안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심리치료를 통해 학생들에게 ‘지금 너희는 안전하다’ ‘보호받고 있다’ ‘지켜줄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4월28일에는 1학년 학생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2학년 13명이 수업을 시작한다. 이후에 구조된 2학년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에 복귀할지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학생들, 그리고 부모님들과 상의하고 있다.

수업 재개 후 심리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나? 인사를 어떻게 나눌지, 사고 기억이 상기되거나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지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와 경기도wee센터(학생 안정통합시스템) 선생님 한 명씩 짝을 이루어 반마다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익숙한 학교가 한동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교실에는 실종 학생들에게 쓴 편지가 가득하다. 학생 유품도 있다. 분향소나 발인을 바라봐야 할 일도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텐데, 사고 당시를 떠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주의해야 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심리적 고통이 클 텐데…. 지금 생존자에게는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 살아남은 학생에 대한 과도한 취재 경쟁은 상처를 더 보태는 것이다. 생생한 영상이나 소리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일은 절대 금지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상당수가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하다. 평생토록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일도 언젠가는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꾸준하고 체계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4월17일 촛불문화제에서 여섯 살 아이가 촛불을 들고 ‘옆집 사는 오빠가 사고를 당했다’며 울고 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시민 대다수가 세월호 참사를 알고 있다. 비극적인 상황까지 묘사하지 않되, 기본적인 정보를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사람들을 아프게 했지만, 결국 서로 도와서 잘 이겨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특히, 영·유아는 스트레스를 잘 숨긴다. 겉으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힘든 경우가 많다. 힘들어하면서도 어른들이 힘든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빨리 알아채기 때문에 피하고 괜찮은 척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기다리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한다. 이상 징후로는 잠을 자기 불편해하고, 좋지 않은 기분을 표현하고, 평소보다 많이 먹거나 식욕이 떨어지는 등의 반응이다. 다소 산만하거나 들뜨는 식의 증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안산시 전체가 사고를 당한 이들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시내는 썰렁하고, 유흥가는 오래 문을 닫고 있다. 안산의 한 내과에서 일하는 동료는 신경안정제를 타러 오는 환자가 늘었다고 전했다. 분향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울먹거렸다고 한다. 단원중학교와 단원고등학교는 울타리 하나를 놓고 생활한다. 중학교 학생들에게도 심리적 상처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가만히 있다가도 건드리면 금세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상황이다. 단원중학교 학생 24명은 구조를 기다리는 피해 가족이다. 한 반 걸러 피해 가족이 있다. 아마 안산 학생 대부분이 피해 학생들의 친구였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거나 이웃 주민일 것이다. 이들의 죄책감과 두려움도 크다. 안산시 전체가 우울하다. 이들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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