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5월2일 청계광장 촛불집회(위)는 10대의 주도로 이뤄졌다. 어지럽게 둘러앉아 벌이는 육성의 자유 토론장이었다.

요즘 10대를 30대 후반의 기자가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 윗세대는 오죽할까. 한나라당과 청와대, 교육 당국이 ‘배후설’ 운운하며 헛다리 짚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는 간다.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10대, 그들은 누구인가.

5월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청문회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떴다. 전날 여의도 촛불집회에서 만난 10대 취재원이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김보영양(18)이다.

“오늘 청문회 어떻게 됐어요?”
(아직도 하는 중)
“재협상 될 것 같아요?”
(재협상이냐, 개정이냐 논란)
“와 잘됐네요. 인터넷 봤는데 조경태 아저씨 멋지삼. ㅋㅋ”
(네티즌이 ‘조포스’란 별명 붙여줌)
“나도 직접 가서 보고 싶었는데 TT”
(아쉽)
“지금 인터넷 동영상 보고 있는데 재밌네여.”
(개그보다?)
“근데 장관 왜 아무 말도 못해요?”
(그래서 생긴 별명 ‘옹알운천’)
10대 취재원과의 ‘문자질’은 숨가빴다.

요즘 학교가 뒤숭숭하다. 세 차례의 대규모 광우병 집회를 통해 형성된 집단 체험의 기운이 학교로 전파되고 있다. 수업하러 들어온 교사에게 다짜고짜 “어른들은 이명박을 왜 뽑았어요?”라고 묻지를 않나, 벌써부터 급식의 고기반찬에 손을 대지 않는다거나, 매점 이용률이 뚝 떨어져 빵이며 우유까지 ‘반값 세일’을 해야 할 지경이라거나, 쇠고기 외식을 하자는 부모를 설득해 돼지갈비로 메뉴를 바꾸는 10대가 등장했다.

어른들은 얼얼하다. 정치인·부모·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이름의 기성세대는 거리로 뛰쳐나온 10대에 대한 파악이 아직 안 됐다.

‘탄압’에 맞서지 않고 뛰어넘기

쇠고기 반란의 신호탄 격인 5월2일 집회는 ‘미성년자(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만 20세 미만)’가 주도했다. 산만했지만 발랄한 기운이 청계광장을 채웠다.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마이크 쥔 연사의 포효는 없었다. 지도부가 올라선 연단에서 시작되는 종렬 대오도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구한말 만민공동회의 그것처럼 둥그렇게 모여앉아 벌이는 육성의 자유토론장이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이들은 ‘구호나 손팻말은 안 된다’ ‘정치 집회는 안 되고 문화제는 된다’는 자의적인 잣대를 들고 나온 공권력에 순응(?)하는 듯했다. 좋다, 입을 닫아주마! 침묵의 힘은 더 강렬했다. 이날 여의도 집회의 콘셉트는 ‘소리 없는 아우성’. 날이 어두워지자 옆 사람에게 촛불을 밝혀주는 점등식이 시작됐다. 

“세상의 변화는 자연의 흐름처럼 서서히 이뤄지는 것입니다. 한마디 분노를 표현하기보다 침묵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진리를 보여줍시다.” 이들은 ‘탄압’에 맞서지 않고 뛰어넘는 방법을 택했다. 
 

ⓒ시사IN 안희태경찰의 ‘정치 집회 불허’ 방침에 따라 5월6일 여의도 촛불집회는 ‘침묵 집회’가 되었다.

‘재협상’ 논란을 일으키며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까지 움직이게 만든 10대에게 어른들은 자세를 낮췄다. 참여연대에는 “애들이 저러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회원들의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결성식에 참석한 오종렬 대표(진보연대)는 “이번엔 우리가 (10대들의) 사주를 받았다”라고 말했고, 문국현 대표(창조한국당)는 “정치인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라고 사과했다.

386 운동권은 구경꾼 처지

광우병 반란을 주도하는 중·고등학생은 1990년대생이다. 이들의 부모는 이른바 386세대로 상징되는 40대. 거리로 나선 자식 세대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이날 여의도 집회에서 한 40대 중반 남성은 아스팔트에 주저앉은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박카스’를 날랐다. “난생 처음 촛불집회에 나왔는데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라는 그는 벌써 ‘박카스 아저씨’로 유명해졌다. 질서 유지를 맡은 한 남고생은 무전기를 들고 자기들을 관찰하는 정보과 형사를 보더니 “저 ‘나무도령’이라고 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닉네임을 댔다. 이 40대 형사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실명을 캐묻지 않았다. 영장이 없으면 실명 추적은 불가능하다.

‘안티 이명박’ 카페에서 활동하는 남자 세 명이 감동 먹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우리는 정형화한 틀 속에서 배웠다. 지식으로 알고 의식적으로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다. 자유롭고 거침없다. 민주화 20년의 결정체가 바로 이들이다.” 2007년 대선을 관통한 보수 진영의 ‘잃어버린 10년론’ ‘민주세력 무능론’을 뒤집는 실체를 목도한 기분일까? “눈물이 났다”라고 말하는 40대도 있었다.

미선·효순 촛불집회, 노무현 바람으로 상징되는 2002년 네티즌 반란을 생생히 기록했던 〈오마이뉴스〉도 이번에는 뒤따라가는 형편이었다. 오연호 대표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봤는데 직접 현장에 가보니 경악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40대 중반 좌파 남자’인 자기가 주눅들 정도로. 홀연히 등장한 그 무서운 집단성에 대해 오 대표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10대는 이명박 정권에 부채의식이 없는 유일한 세대다. 이명박 정권이 되는 과정을 보면서 진보는 좌절했다.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정치집단이든 자기 잘못이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잘못을 해도 혹독한 비판을 가할 수 없었다. 20대 대학생은 당장 취업 현실에 묶여 보수화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명박을 지지한 적도 없고, 실패한 개혁에 대한 죄책감도 없는 10대는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지금의 10대는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정치는 피부로 작동한다. 386세대처럼 ‘시대’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0교시 수업으로 아침도 거르고 급식을 먹었다가 광우병 걸렸지만 의료민영화 때문에 치료도 못 받고 한반도 대운하에 뿌려질 우리의 미래”라는 말처럼 10대에게 정치는 ‘나의 현실이고, 나의 미래’다. 그런 터에 인터넷과 휴대전화라는 기술 수단을 소유한 10대는 어른 못지않은 정보를 취득하고, 일사불란한 네트워킹을 통해 정치판을 교란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프라인 언로를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이 통제할 수 없는 세대다.

똑똑한 소비자냐, 새로운 정치 주체냐

10대를 과대 포장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 무기력증에 빠진 어른들의 호들갑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한 강북 서민과 같은 맥락 아니냐”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 점에서 10대의 광우병 반란은 자기 욕망에 충실한 ‘똑똑한 소비자’의 출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치 주체로서 10대는 아직 미숙하다. 거침없음이 넘쳐 거칠다. 그들의 분노는 논리와 확신으로 무장돼 있지만 모독과 모욕의 수위를 넘어설 때도 있다. ‘촌철살인 욕쟁이’ 김어준씨(41·언론인)가 10대에게 한 수 가르친다.

“욕은 타이밍과 억양이 적절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황을 포괄적으로 이해했을 때 나오는 욕설 한마디는 예술성을 갖는다.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려면 적절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그런데 10대들은 아직 인터넷과 광장을 구분하는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의 정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강력한 정치 수단을 가졌지만 정치 훈련은 덜 되어 있다. 당연하다. 기성세대가 함께할 몫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10대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개인의 분노를 집단으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정치 본질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대들의 정치 에너지는 어디로 흘러갈까? 단정짓기 어렵다. 

정치분석가 김헌태씨(43)는 “10대를 운동권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합리적 시민’의 출현 가능성을 기대했다.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로 갈라져 있는 어른의 정치판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 주체의 출현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20대를 연구한 우석훈씨(41)는 ‘지금 10대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를 가정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10대는 집단체험을 하고 있다. 소통을 통해 연대감을 확인하고 또래와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지금의 대학생과 다른 양상이 드러날 수 있다.”

‘이명박 5년 뒤에 보자’는 10대들의 으름장은 과연 통할까?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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