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자맹 주아노 (문화 평론가·프랑스인)
내 친구 가운데 최근 한국에 실망해 외국으로 이민을 갈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한국에는 뭔가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개념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불만이었다. 많은 노력과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 친구들의 의견이었다.

높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여전히 열악하다. 미래가 없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내 별장이 있는 경기도 시골의 한 하천 앞에서 나눴다.

논밭 사이를 꼬불꼬불 지나가는 이 하천은 주변이 철새가 둥지를 트는 갈대로 둘러싸여 있다. 물이 맑고 적당히 깊어서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하천 주변에는 자갈이 흩어져 있고, 인공 시설이라고는 화장실과 주차장이 전부였다.

하천변을 따라가다 보면 절벽에 야생 진달래가 이리저리 박혀 있는 멋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데서 소풍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면 운치가 딱 좋았다.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서울에 아름다운 장소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외국인에게, 도심을 탈출하는 기쁨을 줄 수 있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곳이었다. 사실 주변 자연을 벗삼아 산책하고 어울리며 살아온 유럽이나 북미 사람에게 한국 시골 풍경은 실망을 주곤 했다.

그런데 내가 아꼈던 이 멋진 풍경이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크레인이 갈대밭을 모두 갈아엎어 버리더니 거대한 돌로 채워진 인공 제방이 설치되었다. 자갈과 나무가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로 채워졌다.

도대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시사IN 윤무영한국의 미를 간직한 정원이 사라지고 있다. 위는 창경궁 부용지.
군청이나 지방정부는 이런 현대화 시설 투자로 ‘세계적인 수준’의 편의 시설을 만드는 것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인공 시설물은 주말에 잠깐 왔다 가는 인근 주민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강을 더럽히고 환경을 파괴하는 데만 일조할 뿐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자연 개발은 한때 아름다웠던 땅을 사람을 위한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길을 재촉한다. 레저 산업을 키우기 위해 환경이 파괴되고 자연이 희생되는 소비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한국에서 교수의 강의나 책을 통해 이른바 ‘한국의 독특한 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건 공허한 주장이거나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책과 수필에만 등장하는 ‘고유한 미’라는 것이 뭘까?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한국 고유의 미라는 게 실질적으로 뭘 뜻하는 걸까. 내가 앞에서 묘사했던 그런 풍경은 지금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창경궁 후원과 담양 소쇄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국인은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용문시 근처에서 내가 본 풍경이 바로 그 멋진 한국 정원의 미 가운데 한 사례가 아닐까?

그동안 한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지만 정작 그것을 현실로 실현하는 노력은 언제나 게을리 해왔다. 이제 그런 고민과 생각을 실천해야 할 때다. 더 이상 내 외국인 친구들과 영리한 한국 친구가 더 나은 땅을 찾아 떠나기 전에 말이다.

기자명 벵자맹 주아노 (문화 평론가·프랑스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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