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모음인 ‘아, 오’는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인 ‘우, 어’는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을 모음조화라고 해.”

“그럼 내 얼굴은 까마, 너는 하야. 너는 누러!” ‘누러’라니! 반 친구들도 웃고, 나도 웃음이 터졌다. 질문의 주인공인 ㄱ양(18)은 열 살부터 5년간 유학을 갔던 학생이다. 그래서 ㄱ양이 구사하는 한국어는 한국에서 자라온 평균적인 또래에 미치지 못한다. 본인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그녀가 곧이어 하는 말. “아아! 그럼 누라!”

친구들은 ‘내 동생이 여섯 살인데 너처럼 말한다’며 귀여워하지만 그럴 때마다 ㄱ양은 내심 자존심이 상한다. 각오했던 부분이지만 국어 교과서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말이니 한국어는 어떻게 되겠지’ 하던 생각은 ‘어떻게 해도 한국어가 안 된다’는 좌절감으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영어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대학 입학을 위해 많은 조기유학생들은 영어 특기자 전형을 준비한다. ㄱ도 같은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합격 조건을 충족시킬 토플 점수를 내기 어렵다.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을 습득하려면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고 이해하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언어가 없는 이들에게는 사고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그림 서혜주

한 조기유학생의 고백, “저는 영어가 무서워요” 

문제는 시험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자존감은 영어 점수에 달려 있다. 유학생이라는 자신의 위치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시험 전후로는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합당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이다. 유학파이니 당연히 영어를 잘할 거라는 주변의 기대는, 유학 기간 내내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두려워서, 어학원에 적응하기 바빠서, 정작 영어 공부에는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저는 영어가 무서워요. 토플 성적표 나오면 제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고1 첫 중간고사 때는 영어 시험 시작하자마자 팔이랑 다리가 미친 듯이 떨리는 거예요. 책상이 달달달달. 그래서 다리를 꽉꽉 누르면서 시험을 보는데 글자가 하나도 안 보였어요. 시험 끝나고 보니까 제가 허벅지를 너무 눌러서 파랗게 멍이 들어 있어요. 저는 제가 뭘 하는지도 몰랐어요.”

아홉 살 때부터 7년간 캐나다에서 생활한 ㄴ양(18)의 고민이다. ㄴ은 ‘come’과 ‘go’가 헷갈린다. 한국어로 ‘오다’와 ‘가다’도 헷갈린다. 모든 어휘가 헷갈려서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에 처음 갔던 2년 동안 말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한국에 돌아온 2년간 아이는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 유학 기간이 짧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ㄷ양(17)은 열한 살에 미국에 갔다가 3년 후 한국에 돌아왔다. ㄷ은 한글 문장마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 등을 찾으며 의미를 끊어 읽는다. 영어든 한글이든 그렇게 읽어야 겨우 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으니 글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괴로운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유학생들의 부모가 아이의 영어 점수를 보면서 초연하기란 어렵다. 모든 걸 다 해줬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에게 원망이 생기고, 그로 인한 미안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간다. 얼마 전, ㄴ양은 지능 검사를 받았다. ‘학부모 모임에 나가보면 다른 유학생들은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우리 애만 이런지’ 괴로워하던 어머니의 결정이었다. 그 모임의 ㄱ양과 ㄷ양도 같은 고민을 한다는 진실을 ㄴ양도, ㄴ양의 어머니도 모른다. 내 자식이 곧 내 자부심이기에 단점을 침묵하는 사이, ‘조기유학의 성공사례’들은 포장되고 불티나게 팔린다. 유학 다녀오더니 다르긴 다르더라는 환상 속에서 10세 수준의 2개 국어 구사자가 탄생한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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