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인 우리 반은 요즘 진학 상담이 한창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일반 인문계고’를 선택한다. 성적이 50% 안에 들고 가정형편이 되는 아이들은 ‘자사고’로 진학하기를 바란다. 성적이 더 뛰어난 극소수는 외국어고나 과학고, 국제고, 혹은 좀 특별한 자율학교로 진학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문계고에 진학해 ‘성적을 깔아주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나 특별한 자기만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특성화고를 고려한다. 과거에 실업계, 혹은 전문계로 불렸던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컴퓨터·디자인·애니메이션·조리 계통의 학교들은 치열한 경쟁력 때문에 높은 내신성적이 아니면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자사고 교납금, 일반고의 세 배

자사고는 어떤가. 우리 학교와 같은 재단인 바로 옆 경희고등학교는 3년 전에 자사고가 되었다. 그 전에는 대부분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별 고민 없이 선택했던 인문계고였다. 많은 아이들이 이제는 코앞에 있는 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야 등교할 수 있는 다른 학교에 가야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성적 때문에, 혹은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교납금이 부담스러워 성적이 돼도 가지 못하는 그 학교에 대한 아쉬움에 가슴 한쪽이 아리다. “솔직히 가고는 싶죠. 집에서 가깝고 좋은데…. 하지만 할 수 없죠, 뭐.” 누가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가서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다.
 

그림 박해성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는 동료 교사들에게 물었다. 일반고의 세 배나 되는 교납금을 내고 보낼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하고. 그들은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한다.

“음, 뭐 그렇게까지 교육과정이 특별한 건 아닌 것 같고 진학률이 굉장히 높은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니까….”

처음 자사고가 만들어진다고 할 무렵,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 대부분이 진학하던 바로 옆 학교에 절반의 아이들이 성적과 돈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된 현실에 분개했다. 그렇게 마음을 함께하던 동료 교사들도 학부모로서의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아니 어쩌면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역시 희생자인지도 모른다. 선택의 폭이 좁아져 자사고에 보내지 않으면 일반 인문계고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데, 자사고나 특성화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위상이 추락한 일반 인문계고에는 별로 보내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이름의 ‘비평준화’ 정책

학교의 평준화를 두고 ‘하향평준화’ 운운하던 보수 언론은 결국 지난 이명박 정부를 만나 고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비평준화를 기어이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우왕좌왕하면서 열패감과 불안감을 안고 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기 초 외고에 가고 싶어하다가 그냥 자사고로 진학하겠다던 한 아이가 여름방학이 지나자 다시 외고 준비를 하겠단다. 자사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보도를 보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졸속적인 교육정책은 아이들 모두와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에게 상처를 준다.

어쩌면 먼 훗날 ‘한때 자사고라는 게 있었지’라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래, 그게 언젯적 얘기지? 왜 그렇게 비싼 돈 주고 고등학교를 다녔나 몰라…’ 하고 한심스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세월이 흘러가는 와중에 우리 아이들이 끼여 있는 것이다. 정책과 세월 사이에, 쩔쩔매면서. 모두 다 피해의식에 흠뻑 젖어서 말이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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