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했더니 부모들이 내게 말한다. “그래 당신 말 알아들었고 당신 말이 맞다. 그런데 밖에 아이들이 나와 놀아야 우리 아이도 나가 놀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없는데 어떻게 놀라는 말인가…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의견을 듣고 속내를 드러내는 걸 꽤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제 편히 이야기하겠다. 어른들이 참 염치를 모른다. 어른들이 비겁해도 너무 비겁하다. 어른들이 끝끝내 자기 아이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들이 없으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 손을 잡고 빠져나가면서 자신들의 이어지는 이런저런 ‘아이 빼돌리기’ 행위가 정당하다는 근거로 가져다 쓴다. 그러면서도 동네 아이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나버려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렇게 강변하는 부모들은 곧이어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고 미디어와 게임기를 손에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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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는 걸 부모 마음대로 아이들을 이런저런 데로 빼돌리기 위한 핑곗거리로 삼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어른들의 비겁함과 뻔뻔함은 여기까지 왔다. 동네 마당과 골목에 나가도 아이들이 없게 만드는 일에 나와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깊숙이 이바지했음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당신과 나의 이런 태도가 마당과 골목을 없애고 놀이와 아이들을 떼어놓는 일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가 없다고 항변하지 말고 왜 밖에 나가면 아이가 없는지, 그 많던 아이가 다 어디로 갔는지, 당신의 아이를 그동안 어디로 빼돌렸는지, 이 아이들을 마당과 골목에서 사로잡아 한곳에 모아둔 자들은 누구인지 물어보자. 그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였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사라지게 한 자들이 우리였음을 안다면 그 우리와 어떻게 싸워 아이들의 놀 터와 놀 틈을 되찾아올 것인지 출발할 수 있다.

왜 아이들이 없는지는 간단하다. 우리가 모두 한목소리로 동네를 돌며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모아 한곳으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이다.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 근처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사는 곳에 가보면 오후에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는 대부분 외국 아이들이다. 그들은 묻는다. 한국 아이들은 이 시간에 다 어디에 있는데 보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부모들은 한두 번 자기 아이를 밖에 나가 놀게 해보려 했으나 나온 아이들이 없어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니까 아이가 집에서 게임을 할 수밖에 없고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듯 아이를 오래도록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뒷덜미를 틀어잡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막말이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고 발을 뺄 것이 아니라 왜 아이들이 없는지, 다 어디 갔는지, 우리 사는 세상에 누가 무슨 짓을 해서 가까이 사는 옆집 아이 하나와도 손을 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물어보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인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쉽게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차선은 상식을 가지고 정직한 태도로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그게 부모이다.

기자명 편해문 (어린이놀이 운동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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