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이런저런 장애 꼬리표가 아이들에게 남발된다. 놀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해 고통받는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은 보지 않고 드러난 행동만을 따지는 데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상술 그리고 부모와 교사들의 ADHD에 대한 몰이해로 아이들이 멍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말하기·듣기·읽기·쓰기·셈·학습·감각·운동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주의 산만’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은 찾기 어렵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인 상태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죄짓는 일이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이해받지 못해 오갈 곳이 없다.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인다, 소리 지른다, 운다, 마구 뛰어다닌다. 또는 생기 없이 무기력하다. 지금 초등학교 교실의 한 모습이다. 마구 뛰는 아이와 기운 없는 아이는 사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유를 원한다. 교육은, 마구 뛰거나 힘없는 아이들 사이에 있어야 할 명랑한 아이를 다 집어삼킨다. 이렇게 속으로 꼭꼭 눌러놓았던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어 밖으로 꺼내면 그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환자가 되고 약을 먹는다. 그렇지만 이 약은 치료제가 아니다. 한낱 각성제일 뿐이다. 부작용도 크다. 그렇다면 치료제도 아니고 부작용도 큰 이런 약을 왜 아이에게 오래도록 먹여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