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익국내 기업이 수자원과 재활용, 대체 에너지 산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10년 전부터 ‘지속 가능’의 기관차를 발진시킨 세계 일류 기업에 비해 10년 뒤졌다.
열차는 기관차가 객차를 꽁무니에 달고서 곧게 뻗은 철길 위를 직진한다. 유턴이나 좌회전이 없다.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객차를 끌어오던 기관차가 떨어져 나가고, 다른 철로에서 기다리던 ‘새로운 기관차’가 객차를 인계받아 ‘새로운 철길’ 위를 달려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의 전환에도 ‘기관차를 바꾸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달리던 기차가 멈추면 몸이 가던 방향으로 쏠린다. 고등학교 때 배운 초보적인 물리 지식을 동원하면, 관성의 법칙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도 관성의 법칙은 작용한다. 사실은, 정신의 관성이 물리적 관성보다 더 끈질기고 오래 지속된다.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경구를 최근에 얻어 들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존 방법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이 말을 좀더 쉽게 설명하자면, 머그잔을 벽에 던져서 깨버렸다고 할 때 그 파편을 벽에 던지는 방법으로는 다시 붙일 수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원상 복구를 외치면서도 손으로는 벽에 파편을 던지는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문제를 해결해줄 ‘새로운 기관차’가 바로 옆 철길 위에서 대기하는데도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경은 21세기 반도체다”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개념은 환경 재앙의 위기에서 지구를 구출할 새로운 기관차의 하나이다. 1992년 리우회의를 계기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 말은 15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 대화에서도 우리 입에 오르내린다. 심지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마저 ‘지속 가능’을 앞세우며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기관차를 바꾸지 않은 채 관성대로 옛 길을 달리면서 이마에 새로운 노선 표지를 갖다 붙이는 꼴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지속 가능’이란 레테르가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기업인이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 

환경재단 최열 대표는 리우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부터 지구 온난화(기후 변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기업인을 만나면 “물과 에너지에 투자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라고 설득했다(그가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는 “환경은 21세기의 반도체”이다). 과거의 경제가 석유 소비에 의존하는, 그러니까 이산화탄소 배출로 성장하는 시스템이었다면 미래의 경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에코 이코노미(Eco-Economy) 시스템이라고 입이 닳도록 설명했지만 귀담아듣는 기업인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다행히 과거에 “석유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던 국내 기업이 지금은 수자원과 재활용, 대체 에너지 산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최 대표의 진단은 다르다. “세계의 일류 기업들에 10년 뒤졌다”라는 것이다. 이미 10년 전부터 ‘지속 가능’의 기관차를 발진시킨 선진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뒤늦게 따라가는 형국이어서다. 그것이 정말로 걱정되는 우리의 잃어버린 10년이다.

환경재단은 지난 2월22일 기후변화센터(이사장 고건)를 창립했다. 세계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의무적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한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날이 2005년 2월16일이므로 그 어름에 날을 잡았다고 한다. 기후변화센터가 역점을 두는 사업 중 하나가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이다. 이제껏 높은 자리에 앉아 남을 가르치고 지시하던 사람들, 이를테면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정부의 고위직 관리 등 60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매주 세 시간씩 10주 동안 집중해서 기후 변화에 대해 공부시키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환경 DNA 집어넣기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사회를 바꾸는 힘의 원천은 국민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기관차 노릇을 하는 것이 ‘힘 있는 소수’라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들의 머릿속 기관차가 지속 가능의 궤도를 올라탈 때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는 속도에 가속이 붙을 것이다. 부디 공부 열심히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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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상익 (편집위원·환경재단 도요새 주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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