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가족이 불량배에게 맞았다 치자. 맞긴 맞았는데 아주 많이, 무척 세게 맞았다 치자. 상상하기 끔찍하지만 아주 많이, 무척 세게 얻어맞은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치자. 게다가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다. 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① 경찰에 신고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기다린다.
② 신고는 무슨, 다 자기 팔자려니 얼른 체념하고 남은 가족에게 충실한다.
③ 경찰을 믿느니 내 자신을 믿겠노라. 직접 범인을 찾아내 잔인하게 복수한다.

〈브레이브 원〉은 이 중 3번을 택한 여자 이야기다. 다른 게 있다면 여자 자신도 거의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다는 사실이다.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에게 그날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남자 친구와 장래를 약속할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자신이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여느 때처럼 반응이 좋았다. 오붓하게 심야 데이트를 즐기러 한적한 공원에 가기 전까지는 모든 게 즐거웠다. 시답지 않은 이유로 시비를 걸어오는 불량배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두 사람. 남자는 죽고 여자는 깨어났다.

그날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하루아침에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여자는 충동적으로 총을 산다. 처음엔 호신용이었지만 이내 용도가 바뀌었다.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하나 둘 처단하기 시작하는 에리카. 대중의 반응이 뜨거울수록 그녀의 심장은 점점 차가워진다.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이른바 '복수 3부작'이라고 이름 붙였을 때, 사람들은 '왜 하필 복수냐'고 물었다. 공권력을 통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사적으로 복수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한 인간이 사적으로 벌이는 잔혹한 복수극에 삼세판이나 집착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이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복수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주제는 없다."

수많은 신화와 민담과 소설과 영화에서 반복해 온 이야기. 그건 자식을 잃거나, 부모를 잃거나,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 놓고 주인공과 똑같이 분노하도록 관객을 유도한 다음, 주인공이 성실하게 노력해서 복수하는 과정에 동참시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저 나쁜 놈을 잡아서 빨리 처단해야지' '하지만 주인공은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그렇게 마음을 졸이면서 보게 만드는 이야기야말로 언제나 그를 흥분시키는 복수극의 매력이라고 박찬욱은 말했다.

주인공과 공범 되는 짜릿한 쾌감

그러므로 〈브레이브 원〉의 매력이 이 영화만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재미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복수는 나의 것〉이면서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친절한 금자씨〉라고 할 만하다. 어느새 주인공보다 더 분노하고, 주인공보다 더 갈등하는 관객들을 꼼짝없이 공범으로 끌어들이려는 감독의 뜻이 다른 영화에서와 같이 〈브레이브 원〉에서도 이루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복수, 그 짜릿한 쾌감 위로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 흥미롭다. 표적을 잃어버린 총구는 이제 누구를 겨눌 것인가. 복수를 끝낸 주인공은 다시 평온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우리 시대 사적 복수는 끝내 용서받지 못할 범죄인가. 영화는 할리우드 메이저 상업 영화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나름대로 용감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을 사려 깊은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던져서 다행이다. 행여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였다면 윤리와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 마지막 뒷모습이 꽤나 가증스러워 보였을 테니 말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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