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야구선수의 일가족 살해 사건에 이어 안양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충격 속에 이명박 정부는 사형제를 존치함은 물론이고, 사형 집행까지 적극 검토한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2007년 12월 말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134번째 사형폐지국이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인권 선진국 진입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지난 10년간 살인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하지는 않았다. 1998년 966건이었던 건수는 2000년대 들어 1000∼1100건 정도로 소폭의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증가율로 보면 사형이 엄격하게 집행되었던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가 최근보다 더 높았다. 요컨대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살인 범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형을 폐지한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일각에서는 사형 집행을 부활하자고 안달하는 것일까? 그들은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이냐고 말한다. 졸지에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를 생각하면 많은 국민이 피가 거꾸로 솟는 울분을 느낀다. 나도 그렇다. 범죄 피해자와 유족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그들을 위로해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범죄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되는 것일까. 범죄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 

사이코패스.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인해 죄의식이나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 따위는 전혀 없이 범죄를 즐기는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교정과 치료가 거의 되지 않으며 재범의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문가들은 일단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그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한다고 치자. 그런데 그 방법이 왜 사형이어야 하는가? 무기징역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이른바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살인범죄자는 전체 살인범 중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말 위험한 범죄자라면 무기징역을 통해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법을 쓸 수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사형제로 강력 범죄 예방 불가능

엄격한 사형선고와 집행을 통해 형벌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도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 범죄자라면 이미 사형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자 하는 마음을 제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위압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언하건대, 사형제가 흉악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이웃 사람이 왜 그렇게 변했을까를 생각해보자.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만을 강조하고, 사람들 사이에 정상적인 소통의 문화가 차단된 사회에서 낙오한 사람이 겪게 되는 인격적 고통의 하나가 사이코패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그저 개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철저하게 소외시키지 않았던가. 몇몇 살인 범죄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각박한 사회 구조와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사이코패스 살인범은 계속 출현할 것이다.

피해자와 유족이 겪는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 되지만, 감성적 울분이 범죄 정책을 좌우해서도 안 된다. 정치인들이 피해자의 울분을 표로 인식하는 순간, 범죄 문제가 정치화하는 순간, 강력한 응징과 보복의 정책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사형 집행이라는 잔혹한 응징 정책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기자명 이호중 (서강대 법학부 교수·천주교인권위원회 운영&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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