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동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서 일했던 한영수씨(54·선관위 전 직원)는 이제 선거 때가 되어도 할 일이 없다. 지난해 11월 직장에서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해고된 사유는 ‘기관 위신을 추락시킨 죄’.

한씨는 2002년 대통령 선거 개표분류기에서 여러 개의 혼표가 나타나는 오류를 발견하고,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에게 문제 제기를 했다. 개표분류기를 믿을 수 없으니, 분류기에서 나오는 표를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의 건의는 묵살당했다. 집요하게 항의하고 건의하는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전출 명령과 징계. 그는 언론 등에 이 사실을 제보하고, 개표기 문제를 이슈화했다. ‘괘씸죄’가 적용됐는지, 선관위는 지난해 11월16일 그를 해고했다. 그가 해고된 지 사흘 만에, 선관위는 2007년 대선 개표 사무와 관련해 ‘투표지 분류기 분류 뒤 전량 육안 확인 방침’을 발표했다. 한씨가 ‘직업 수명’까지 걸고 지속 건의했던 대로 선거 사무를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고 결정은 철회되지 않았다.

한영수씨는 “내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선관위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조직의 체면을 구긴다면 발설해서는 안 되는가 보다. 해고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래서야 어떤 공무원이 내부 고발을 감행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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