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전의 출발지는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이다. 뉴욕 전시를 마치고 멜버른, 토론토, 로스앤젤레스, 파리를 순회한 후 서울에 당도한 것이 이 전시의 내력이다. 전 세계를 순회한 전시의 포맷은 유사하다. 700점 이상(국내 전시는 862점)의 출품작은 팀 버튼의 무명 시절부터 영화계 전설로 대접받는 현재까지 그의 영화를 저변에서 지탱해준 소묘, 회화, 사진, 스토리보드, 인형, 의상 그리고 영화 소품으로 채워졌다. 또 전시장 내·외부에 팀 버튼이 고안한 귀여운 캐릭터를 거대한 풍선으로 만들어 세워두거나 전시장 입구를 입 벌린 캐릭터로 대체한 점도 동일하다. 팀 버튼마저 자신의 전시를 두고 “더 큰 그림(영화)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으로 제작한 자료들이라 “세상에 공개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라는 심경을 밝혔을 정도다.
예술가의 결과물로 전시회의 성패를 가늠하던 방식에 비하면, 거의 전적으로 결과물을 향한 긴 노정을 탐사하는 전시회의 성격 때문에, 800여 점에 이르는 앙증맞고 낯익은 캐릭터와 신기한 영화 소품들만 둘러보다가 나온다면 관전 포인트를 제한적으로 잡은 꼴이 된다. 전시실마다 팀 버튼의 기괴한 미감을 증언하는 대동소이한 모양새의 조형적 습작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괴이한 20세기 초반 표현주의와 고딕 취향은 시대감각에 맞게 조율되어 캐릭터에 입혀졌다. 심지어 ‘비행접시와 외계인’이라는 그림은 15세기 북유럽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현대적 SF로 각색하고 재구성한 것이었다. 팀 버튼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렇듯이 전시장에는 도드라지고 큰 눈알, 섬뜩함은 사라진 귀여운 해골, 큰 두상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팔다리의 신체, 바늘 봉합 자국이 선명하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는 흉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무수하게 출연하는 캐릭터가 이미지와 소품의 형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다만 이 친숙한 도상들도 전시 동선을 따라 연거푸 대면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나열된 작품을 타성적으로 바라보는 관전법을 버릴 필요가 있다.
캐릭터보다 스케치를 주목하라
팀 버튼의 대학 전공이 캐릭터 애니메이션이어서 그의 영화 세계와 연결 지점이 많긴 하더라도, 〈팀 버튼〉전은 매해 배출되는 무수한 졸업생들이 뾰족한 진로를 못 찾는 악순환에 빠진 전국 미술대학에게는 각별히 고무적인 체험장이 될 것 같다. 팀 버튼과 그의 영화는 당대 문화·예술의 대세를 지켜볼 수 있는 창처럼 느껴졌다. 영화감독의 회고전이 미술관에서 개최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팀 버튼의 영상 미학이 전 장르를 포괄하면서 전개된 배경 덕일 것이다. 미술은 오랜 전통과 제도적인 보장이 있기에 향후에도 존속하는 예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대 미술에 미디어아트 쏠림이 나타나는 사정이나 시각예술이 영상예술로 기우는 시대 미감에 관해서 전공자라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 편의 영화 장르를 포괄하는 통합적 결과임을 보여줌으로써, 종합예술 본진으로서의 자신감이 〈팀 버튼〉전에 배어 있다. 그의 영화와 인연을 맺은 잠재적인 영화팬이 전시회 관객으로 충원되었을 것이다. 기념촬영 장소로 마련한 듯한 팀 버튼 캐릭터로 장식된 미술관 벽면으로 삼삼오오 모여드는 인파를 지켜보자니, 동시대와 호환하는 시각예술의 실체를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