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통상 ‘생각하는 동물’로 규정하지만 좀 더 구체화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미각의 지배〉(미디어윌)의 저자 존 앨런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하는 잡식동물’이다. 혹은 이렇게도 변주된다. ‘음식을 생각하는 동물.’ 신경문화인류학자라는 직함의 저자는 신경과학과 문화인류학을 접목하여 “인간이란 종이 어떻게 두뇌를 사용해 음식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 분야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흥미로운 사실들과 함께 요리해놓았다.

압축하면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모든 동물은 먹어야 산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음식에 관해 인간만큼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가진 동물은 없다. “인간 외에도 잡식동물은 있지만 인간의 잡식성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러니 ‘초잡식동물’로서 인간의 식이행동은 동물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어쩌다가 그토록 다양한 음식을 먹게 됐을까. 진화사의 초기에 최초로 직립보행을 한 유인원이 나타났다. 두 발로 걷는 유인원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여러 종으로 진화했고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보통 영장류는 포유류와 달리 나무 위에서 서식하는데, 직립보행을 하면서 인류의 조상은 숲에서 나오게 됐고 식물성 음식뿐 아니라 동물성 음식, 고기도 섭취하게 됐다. 즉 어느 시점에서인가 초식동물에서 잡식동물로 변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모든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집단적 협력과 함께 노동의 분화가 필요했고, 지능이 높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바삭한 음식, 곤충의 맛 떠올려줘

두뇌 크기 증가는 인간 진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부피로만 따지면 두뇌는 신체의 2%에 지나지 않지만 안정 시 대사율의 20~25%가 두뇌 때문에 발생한다. 그 비율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 8~13%이고, 포유류는 3~5%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 소모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육류와 고칼로리 식물성 음식의 섭취가 해법이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소장은 다른 영장류의 60% 수준이다. 소장이 작기 때문에 절약되는 열량이 큰 두뇌를 유지하는 데 투입된다.

잡식성으로의 변화와 함께 인간 진화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불을 이용한 조리 기술의 발견이다. 불을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식재료를 바삭한 음식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추정에 따르면 우리가 바삭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원래 영장류가 즐겨 먹던 곤충의 맛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이행동에는 문화적 선호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왜 미국인은 간편한 음식을 좋아하고 프랑스인은 탐미적인 식사 문화를 즐길까. 뜻밖에도 서로 다른 음식 문화의 이념적 뿌리는 똑같이 평등이다. 구대륙에 비해 식량이 풍부했던 미국은 음식 문화의 평등이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의미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음식의 맛을 평가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사회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간주됐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음식을 심미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음악과 미술을 토론하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허용된 주제였다. 그것이 어떻게 평등이란 이념에 부합하는가. 미식가의 세계에서는 돈도 권력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오직 먹는 사람의 입과 음식의 관계에서만 결정된다는 것.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한국식 통념과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기자명 이현우 (서평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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