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났습니다. 승자는 포용을 이야기하고 패자는 승복을 말합니다. 저희 출판사는 실리를 챙기고자 합니다.” 대선 직후인 지난 12월21일 한 출판사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박근혜 당선자 관련 도서를 펴낸 이 출판사는 당선자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옮아오길 기대하는 모양이다. 취임을 앞두고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이니 당연한 예상이라 하겠고, 실제로도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지난 5년 동안 판매된 수량의 20%가 1주일 만에 나가며 사회과학 분야 베스트 5위에 올랐다.

재미난 건 1470만 표를 얻었으나 당선에는 실패한 문재인 후보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더 많은 판매를 기록하며 같은 분야의 베스트 1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맞춰 나온 이 책은 당시 종합 베스트 1위를 하며 수십만 부가 나간 책이라 박근혜 당선자의 자서전과 판매량을 비교하는 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낙선자의 책이 당선자의 책보다 많이 나갔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그런데 정작 독자들의 관심을 끈 건 두 주인공이 아닌 ‘한국현대사’였다. 대선 다음 날부터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서중석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가 약속이나 한 듯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세 권은 모두 진보 성향으로, 각각의 세대에게 한국현대사 입문서로 읽힌 이력도 비슷하다. 선거 이후 맥이 빠진 출판 시장에 예상치 못한 밝은 빛이 당도한 지금, 이 빛을 제대로 모을 돋보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불길로 끌어내는 건 누구 몫일까.

기자명 박태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문·사회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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