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에 투영된 현대인의 원초 불안은 두 가지이다. 기후 변화든 혜성이든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이 닥쳐 손쓸 사이도 없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주변 인물이 모두 괴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후자는 좀비 영화라 불리는데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 원조이다.

좀비란 중남미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한 산송장을 말한다. 아이티 섬은 흑인 노예 노동력의 주된 공급원으로 악명 높았던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의 주술사는 마약으로 희생자를 가사 상태에 빠트려 사망 진단을 받은 뒤 묘지에 묻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어 농장주에게 팔아먹었다고 한다. 농장주는 노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마약을 주입해 넋을 빼버렸는데, 그런 노예들을 좀비라고 부른다. 좀비란 결국 인간의 탐욕이 낳은 괴물을 뜻한다.

미국 사회에서 좀비 영화가 성행한 계기는 연쇄 살인범이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연쇄 살인범은 거의 틀림없이 사이코 패스라고 보면 맞다고 말한다. 사이코 패스란 일명 ‘인간의 가면을 쓴 악마’라 불린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천성적으로 인류의 1% 정도는 남과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 그들은 남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후천적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감정을 학습할 수 있을 뿐이다.

사이코 패스가 언제나 연쇄 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사회의 통제력이 느슨해졌을 때 그들은 살인마가 되기 쉽다. 농촌 인구가 급속히 유입돼 도시가 대형화·슬럼화해 가정이 깨지고 개인의 익명성이 강화될 때 연쇄 살인범은 출현한다. 양극화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 9월부터 1년도 안 된 사이에 노인과 여성 20여 명을 살해한 유영철을 상담한 범죄 심리학자들은 그가 마치 ‘프레데터’처럼 철저히 식욕과 색욕에만 반응하는, 우리나라 범죄 역사상 처음 보는 유형이라며 놀랐다고 한다. 최근 안양의 두 어린이를 살해해 유기한 정 아무개씨도 연쇄 살인범일 가능성이 높아 경찰이 여죄를 캐는 중이다.

사이코 패스의 특징은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예사로 1분에도 수십 가지 거짓말을 주워섬긴다. 어떤 범죄 심리학자는 그래서 거짓말 잘하는 공직자와 연쇄 살인범은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장난이 아니지 싶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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