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최근 학계는 최소한의 연구 윤리를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분위기다. 한데 새 정부와 표절 당사자들의 뻔뻔함은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학계의 쇄신 노력이 떡잎도 피우기 전에 고사할 것이다.
가요나 영화가 뜨면 으레 표절 시비에 휘말리곤 한다. 인터넷에는 외국 노래를 몇 소절 베꼈느니 하면서 비교·분석해놓은 게시물이 넘쳐난다. 최근에는 학자들의 연구 논문 표절 시비가 한창이다. 몇 해 전부터 표절 문제는 부총리와 장관뿐만이 아니라 대학 총장까지 낙마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표절과는 다르지만, 같은 ‘연구 부정 행위’인 실험 데이터 위조 등으로 과학자의 명예와 명성이 일순간에 날아가기도 한다.

사실 학자로서 얼굴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교수를 모두 ‘글 도둑’으로 보는 것 같아 학생을 바라보기도 불편하다. 관행이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학자도 가엾기 그지없다. 부정 행위였음을 시인하면서도 자리에 연연해하는 장관 후보자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보면 학자 양심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지적(知的) 저작물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책 도둑은 돈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가엾게 여긴다면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표절은 심각한 불법 행위다. 남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해 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해적 행위’라 부른다. 표절은 ‘훔칠 표(剽)’와 ‘훔칠 절(竊)’의 합성어다. 훔치는 행위가 두 번이나 겹쳐 강조된 표현이다. 영어로는 ‘plagiarism(플레이저리즘)’인데 납치와 도둑질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표절이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 행위임을 말해준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동료 교수나 연구자의 표절을 관행으로 묵인하고, 침묵으로 공모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으로 규범화하는 과정에 있다. 연구의 세계화와 국제화에 따라 국제적으로 승인된 연구 윤리규범과 기준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국제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학자로서 인정받으므로 연구 윤리도 국내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술진흥재단이나 학회, 대학교마다 부랴부랴 연구 진실성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윤리 교육도 한다. 부정 행위의 파괴력을 실감하면서, 아무리 학문에 업적 지상주의와 경쟁 체제가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연구 윤리만은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분위기다.

‘중복 게재’도 엄연한 표절, 외국에서는 엄격히 제재

ⓒ뉴시스3월5일 청와대 앞에서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의 교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 회원.
새 정부 장관들의 뻔뻔함과 이명박 대통령 측의 관대함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또다시 관행을 들먹이며 슬그머니 넘어가려 한다. 사후 검증장치도 권력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만일 이대로 유야무야된다면, 어렵게 싹트기 시작한 학계의 쇄신 노력이 떡잎도 피우지 못하고 고사할 것이다. 이런 경험은 쉽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실험 데이터 조작은 물론이고, 표절과 중복 게재, 연구 기여도가 없으면서 논문 저자로 표시하는 행위 등을 모두 ‘연구 부정 행위’와 ‘학문적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엄격히 제재한다. 중복 게재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아무리 자기 글이라도 이미 발표한 글을 재활용하는 것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자기 표절’로서 엄연히 표절이다. 자기 생각이 아니거나 자기 표현이 아니라면 누구 것인지,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를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연구가 세계적이려면 연구 윤리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그런 지적 정직성과 자기 규율이 학자의 덕목이며 사회적 평가의 원천이다.

기자명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