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어느 지자체가 자기 지역에서도 그럴듯한 향토음식 하나 가지고 싶다 하기에 물회를 제안한 적이 있다. 제안 배경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첫째, 동해안 어느 지역이든 물회는 다 있는데 한 지역의 정체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최근에 포항에서 물회를 향토음식으로 육성하고 있다. 포항이 선점한 것이다).

둘째, 동해안에서 사철 나오는 거의 모든 해산물로 물회를 만들 수 있어 음식에 계절성을 입힐 수 있고, 사철 관광 음식이 될 수 있다. 셋째, 현재의 물회는 그냥 물을 타거나 ‘환타’나 ‘오란씨’ 따위 탄산음료를 넣는데 이를 개선하면 훌륭한 맛이 나는 명품 음식이 될 수가 있다. 제안서를 보던 그 공무원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채 한정식 같은 그럴듯한 음식을 내놓지 못하고 뭔 그런 싸구려 음식을 향토음식으로 키우자고 제안하느냐는.

그 공무원의 심중처럼, 물회는 아무렇게나 해서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생선과 채소를 채썰어 담고 그 위에 초고추장 끼얹고 물 부어주면 끝이다. 그냥 물을 부으면 맛이 비니 육수랍시고 따로 챙기는 것이 있기는 한데 청량음료 맛 나는 국물일 경우가 허다하다. 초고추장이 맛나면 맹물이 차라리 낫다.

청량음료 맛 육수의 물회를 먹을 때면 정말이지 상을 엎고 싶다. 이런 물회의 장점(?)이 딱 하나 있는데, 혓바닥을 예쁜 색으로 물들여준다는 것이다. 그냥 두면 콜라에 밥 말아 먹자 할 것이다.

‘선영이네 물회’는 동해안의 한 지자체에 향토음식으로 물회를 제안하면서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그것과 비슷한 물회를 낸다. 강원도 고성군에 있고, 근래 속초에 분점을 냈다. 이 물회의 창안자는 고성군 ‘선영이네 물회’ 집 아들인데, 그가 속초 분점에 있다. 같은 레시피일 것이지만 창안자의 물회를 먹자면 속초 분점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본점의 맛이 덜한 것은 아니다.

‘선영이네’의 아들은 젊은 전문 요리사이다. 이 지역 출신이니 늘 물회를 먹고 자랐을 터인데, 그도 나처럼 물회의 ‘물’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든 물회 육수는 황태와 사과, 배, 키위 등등 20여 가지 재료를 넣고 달인 것이다. 단맛이 곱게 올라오면서 여러 향이 그 매운맛에도 잘 버틴다. 무엇보다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육수이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을 위해 매실물회, 오미자물회도 만들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매실과 오미자의 산미가 물회에 잘 어울릴 것이다.

특물회에는 생선 외에 성게, 개불, 멍게 따위가 들어간다. 생선회와 채소를 씹다가 성게, 개불, 멍게가 툭 튀어나올 때의 즐거움은 상당하다.


선영이네 물회 본점
강원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250
010-5337-6498

분점
강원 속초시 조양동 1373-4
033-631-2640

기자명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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