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에 한국인 선원 4명이 납치된 지 오늘(9월10일)로 500일째를 맞았다. 싱가포르 글로리 십 매니지먼트(Glory Ship Management) 소속 선박인 MT제미니호(제미니호)에 탑승했던 박○○ 선장과 김○○·이○○·이○○ 선원은 지난 2011년 4월30일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193마일(약 310km)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납치 당시 제미니호에 탑승했던 인원은 총 25명이다. 납치 반 년만인 2011년 11월30일, 해적들은 싱가포르 선사가 건넨 협상금을 받고 중국·버마·인도네시아 등 출신 선원 21명을 석방했다. 한국이 국적인 선원 4명만 풀어주지 않은 채 소말리아 내륙으로 데리고 이동한 것이다. 해적들은 한국인 인질을 잡고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한국에 붙잡혀간 소말리아 해적들의 석방과 사살된 해적 8명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 왔다. 



〈시사IN〉은 이들 4명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최근 입수했다. 납치 11개월째인 지난 3월15일, 소말리아 현지 방송국 〈소말리 채널(Somali Channel)〉 제작진이 촬영해 제작한 영상이다. 〈소말리 채널〉이 ‘Xarardheere’(하라데레: 한국인 인질 4명이 억류된 마을의 이름)라는 제목으로 지난 3월18일 유튜브에 올린 이 영상은 현재 한국에서는 검색이 불가능하다.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에서의 검색을 막아놨기 때문이다. 9분 37초 길이의 이 동영상은 해적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한국에 붙잡힌 동료 해적 석방 등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전반부와 해적들이 총구로 위협하는 가운데 한국인 선원 4명이 돌아가며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후반부로 나뉘어 있다. 〈시사IN〉은 이중 일부를 2분34초 길이 영상으로 편집해 공개한다.

영상에 담긴 선원 4명은 촬영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초점 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다들 건강 상태가 안좋고, 생활이 열악하며, 특히 물이 부족하다” “(해적들이) 계속적으로 위협하며 밤에 막 불러내 이 산으로 저 산으로 옮겨다니고 정말 괴롭고 힘들게 지금까지 지내왔다”라는 이들은 “하루 속히 우리들을 구출해달라” “대통령과 당국이 공사에 다망하더라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이구동성으로 호소했다.  

피랍 사건이 발생한 이후 외교통상부는 외교부 출입 기자들에게 제미니호 선원 피랍 사건에 관한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언론에 협상 과정이 노출되면 소말리아 해적들이 몸값을 높게 부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외교부 출입 기자들은 이를 수용했고, 이후 제미니호 사건은 한국 언론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런데 이렇게 제미니호 사건이 까맣게 잊혀진 사이 선원 이 아무개씨의 연락이 몇 달째 두절된 사실이 지난달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에 〈시사IN〉은 8월24일 ‘한국인 선원 4명 피랍 483일째…1명 연락 끊겨’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1보를 내보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선장 박 아무개씨는 지난 7월까지, 선원 2명은 지난 5월까지 부산의 한 선원 인력공급업체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안부와 함께 해적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선원 1명인 이아무개씨는 5개월여가 다돼 가는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문제는 외교통상부가 소식이 끊긴 1명을 포함해 한국인 4명의 정확한 소재와 건강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태가 500일째에 접어들면서 선박 회사의 협상 능력과 의지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불개입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가 해적 등 범죄 집단과의 협상에 나설 수는 없으므로 한국인 인질을 고용한 외국 선박회사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논리를 고수중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박 아무개 과장은 8월22일 〈시사IN〉 인터뷰에서 “4명 다 살아있는 거 전제로 우리는 협상을 한다. 연락이 끊긴 1명도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해적들이 인질을 죽인 경우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소말리아 현지 상황은 그리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9월1일 소말리아 분쟁 전문 매체 〈소말리아 리포트〉는 해적들이 최근 2010년 12월 납치된 시리아 출신 인질 1명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협상금 독촉을 위해 인질을 희생시킨 첫 번째 사례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인질을 죽인 해적 집단의 두목은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이는 협상을 지연하는 다른 선박회사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가하면 〈소말리아 리포트〉는 지난 4월23일 인질들을 서로 차지하려는 세력들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10명이 죽고 20여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한국인 선원을 지키는 해적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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