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3일 한 선생님이 ‘부당 전보 철회’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홍기복 교사(44)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충암고등학교. 아주 유명한 학교다. 야구선수 박명환과 바둑 국수 이창호 같은 스타가 다녀서 유명한 것보다 전과 2범인 이홍식 전 이사장이 마음대로 학교를 주무르고 비리를 저지르는 걸로 더 유명하다. 밝혀진 내용 가운데 몇 가지만 보면, 1억3000만원 유용으로 기관 경고를 받았고, 학교 난방시설 공사비 3억5000만원 횡령과 조카의 병역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02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회계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장부에는 1997년에서 2000년까지 4년 동안 칠판지우개 값 3300여 만원, 분필 값 4600여 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한 해에 선생님들이 분필을 1768자루나 썼고 칠판지우개는 한 학급당 무려 1000여 개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그 밖에 화장실 보수 공사비, 쓰레기봉투 구입비, 응접세트 구입비, 교탁대 구입비, 전화기 구입비 따위를 거짓으로 회계 처리했다. 아이들 등록금과 교육청에서 나온 지원금 등 학교 예산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3월3일 1인 시위에 나선 홍기복 교사(왼쪽)가 등교하는 아이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이렇게 재단을 운영하면 당연히 학생에게 피해가 간다. 오래된 학교 건물은 안전평가에서 D급 판정을 받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700명이 공부하는 중학교 건물에 화장실이 단 하나요, 1400명이 다니는 고등학교 건물에 똥을 눌 수 있는 화장실이 딱 하나다. 이홍식 전 이사장은 한술 더 떠 중학교 건물 중앙 통로에 사무실을 만들어 학생을 건물 뒤 쪽문으로 드나들게 한다. 학생이 한꺼번에 움직일 때는 지하철 신도림역을 연상시킨다.

“불의 앞에 굴종하지 않는 선생님 되고 싶다”

2006년 10월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최재성 의원은 서울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충암학원의 온갖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특별감사를 ‘할 수 있다’고만 답한 뒤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한다.

홍기복 선생님은 그동안 파행적인 학교 운영을 비판하고 시설 개선 등을 요구해왔던 용기 있는 교사다. 그런 홍 교사가 이번에 갑자기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보복성이 짙다. 홍 교사는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도 불쌍하지만 왜곡된 환경에서 잘못 성장하는 게 더욱 안타까워 1인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강제 전보’ 문제에 대해서도 홍 교사는 “아이들한테 또 고개를 들 수가 없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쫓겨가는 모습이 되었다. 아이들은 ‘보세요, 선생님. 자꾸 문제 제기를 하더니 돌아오는 건 이거밖에 없잖아요’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이 정의를 세우고 승리하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어야 교사 자격이 있지 않을까?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 굴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아, 저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창고 같은 학교시설 개선 요구’ ‘학교 회계 법규대로 공개 요구’ 등 팻말에 적힌 다섯 가지 보기 중 선생님을 사전 동의 없이 전보시킬 사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기자명 안건모 (월간 작은책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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