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소비자는 ‘세일’ 앞에서 이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고급 레스토랑의 와인 목록을 보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의 와인이 올라 있다. 도대체 이렇게 비싼 와인을 누가 마시는 걸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비싸다. 그렇다면 왜 그런 비싼 와인을 목록에 올려놓는 걸까? 물론 팔기 위해서겠지만 사실은 중간 가격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싼 와인이 아니라 중간 가격 와인을 선택하도록 유인하는 일종의 미끼 노릇이다. 비싼 가격의 와인이 중간 가격대를 높여놓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주가 예측실험을 해보면 적중률이 50%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동전 던지기와 비슷한 셈이다. 그래서 펀드 매니저가 하는 일에 비해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심지어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고 아무 종목이나 찍게 해서 투자해도 펀드 매니저와 비슷한 투자 성적이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펀드 매니저 자신은 자기 예측의 정확성에 대해 65% 정도의 신뢰도를 보인다고 한다. 펀드 매니저는 판단의 실제 정확성에 비할 때 자기의 판단 능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셈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경제적 판단에서 우리는 이처럼 미끼 상품이나 다른 비교 대상, 자기 과신 따위를 이유로 다분히 비합리적인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판단하는 사례가 많다. 예컨대 새 차를 살 때 얼마나 할인받느냐보다, 내가 지금 가진 헌 차를 얼마나 더 비싸게 팔 수 있는가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새 차의 할인폭보다 자신의 중고차 가격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물건에 대해 언제나 실제보다 높은 가격을 매기려는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믹 마인드〉 마태오 모테르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꼭 사고 싶었던 제품이 20% 가격 인하를 한다. 휘파람을 불며 그 상품을 사러 가는데, 그것보다 가격이 훨씬 더 비싸고 기능이 좋은 제품이 10% 할인 판매 중인 게 아닌가. 어떻게 할까? 적지 않은 사람이 본래 찍어두었던 제품을 사지 않고, 값이 더 비싼 제품을 산다고 한다. 비싸지만 기능이 좋고 할인도 되는 다른 제품의 등장이 좀더 복잡한 계산과 추측을 하게 하면서, 당초 판단을 바꾸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말을 떠올려봄직하다. 

살 때보다 10배 오른 골동품 안 파는 까닭

우연한 기회에 진품 골동품을 싼값에 구입해두었는데, 세월이 지나 10배 이상 값이 뛰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다 팔아서 10배 이상의 수익을 챙기는 게 합리적인 것 같지만, 대다수 사람은 내다 팔지 않고 계속 소장한다. 더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을 재산으로 소유하려는 마음의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물건 값이나 차익 실현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그 물건을 자신이 소유했다는 사실에 가치를 부여한다. 

소득공제는 내야 할 돈보다 더 많이 낸 돈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소득공제로 받은 돈을 공돈으로 생각하고 기분 좋아하거나 펑펑 써버리곤 한다. 이것은 옷 주머니에 1만원을 넣어두고 잊어버렸다가 우연히 그 옷을 다시 입었을 때 1만원을 발견(?)했을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 그 돈은 분명 공돈이 아니며 잊어버렸던 돈에 불과하지만, 공돈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경제학은 효용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인간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합리적 계산보다 매우 우연적이고 다양한 요인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판단을 내린다. 요컨대 비합리적 판단으로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할인 상품으로 가득한 대형 마트에서 지갑을 여는 데 과감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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