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 간부 몇몇을 포함한 중진 스님들의 도박 동영상 파문이 불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서울 근교 사찰의 한 주지 스님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라고 말했다. 조계종단 안팎에서는 스님들의 도박 관행이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이런 오랜 관행이 마침내 곪아 터져나온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청정비구 수행에 전념하는 대다수 스님들은 이런 이전투구식 사태 전개를 보며 개탄하면서도 불교계가 이번 일을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종단 쇄신과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스님은 “도박을 하고 룸살롱에 출입하며 부정하게 종단 지도부를 구성한 승려는 약 2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만3000여 스님은 수행 잘하는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님은 “올해가 조계종 출범 50주년이라서 더욱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1962년 일제가 강제로 합병한 비구승과 대처승 체제를 깨고 대처승을 몰아낸 뒤 부처님의 청정비구 정신을 받들어 새 종단을 세운 것이 조계종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그동안 암암리에 불교계를 파고든 일부 ‘도박승’ ‘은처승’ 문제를 반드시 떨쳐내는 파사현정(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바른 것을 세움)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뉴시스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승려 도박 파문 후 참회의 108배를 올리고 있다.
이번 도박 동영상 파문은 형식적으로는 전남 장성 백양사 후임 방장 선출을 둘러싼 내부의 세력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이 입적한 뒤 후임 방장 자리를 둘러싸고 전·현직 주지 세력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총림 사찰인 백양사 방장은 산하 100여 사찰의 지주를 임명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연히 전·현직 주지 세력 사이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총무원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총무원 호법부가 개입해 전임 주지 측을 편들면서 현 주지 측의 반발을 산 것이다. 전임 주지를 지지하던 총무원 지도부가 낀 백양사 인근 관광호텔 밤샘 도박 현장이 누군가의 몰래 카메라에 촬영된 사건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다. 

백양사 방장 선출 놓고 갈등

성호 스님에 의해 도박 동영상이 공개되자 당황한 자승 총무원장 측은 처음에는 “종권 다툼 세력의 음해다. 종단을 어지럽히는 파승가적 행위를 한 자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총무원 측이 겨냥한 도박 동영상 몰카 촬영 및 폭로의 배후는 명진 스님이었다(40쪽 딸린 기사 참조). 명진 스님은 지난해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문제로 자승 원장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벗어난 총무원 측의 ‘물타기’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비록 우발적으로 분출된 사건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승 총무원장 체제에서의 리더십 부재가 이번 파문을 낳았다는 지적이 종단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성호 스님과 총무원 지도부의 악연은 2009년 총무원장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단 내 4개 계파가 연합해 원장 후보로 밀던 자승 스님에 대해 당시 성호 스님은 자격 시비를 제기했다. ‘자승이 승적을 위조했다’는 문서를 만들어 불교계에 널리 돌렸다. 이로 인해 성호 스님은 멸빈(승적 박탈) 징계에 처해졌다. 하지만 법원은 판결을 통해 멸빈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총무원은 성호 스님을 제적했다(이마저도 법원으로부터 징계 무효 판결이 나와 현재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이후 총무원은 성호 스님에게 종단 내 일체의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공권 정지 5년의 징계를 내렸다. 


ⓒ뉴시스기자회견을 하는 성호 스님(왼쪽)과 조계사 주지직을 사임한 토진 스님(오른쪽).

올해 들어 성호 스님은 총무원이 있는 서울 조계사 앞에서 “자승과 명진이 신밧드 룸살롱에서 술 마시고 성매수 했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두르고 한 달간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말 명진 스님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참회’ 형식으로 고백한 ‘신밧드 룸살롱 사건’ 기사를 본 성호 스님이 이를 성매수로 단정해 자승과 명진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계사 주지이자 자승의 측근인 토진 스님이 나와 시위를 말리다 성호 스님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성호 스님은 토진 스님을 폭행죄로 형사 고소했다. 종로경찰서 조사에서 토진 스님은 “나는 그날 출장 중이라서 폭행하지 않았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성호 스님은 토진 스님의 폭행 장면이 찍힌 현장 폐쇄회로 TV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도박은 스님들의 놀이문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22일 토진 스님 등 총무원 일부 간부 스님 등이 백양사 관광호텔에서 밤샘 도박을 벌이는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성호 스님 손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번 사태는 겉으로는 불교계 내부의 진흙탕 싸움처럼 전개되는 모양새다. 5월15일 동영상에 찍힌 도박 연루 스님들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은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자승 총무원장을 포함한 조계종단 내 일부 고위직 스님의 룸살롱 출입, 성매수 및 은처(숨겨둔 부인) 의혹 등을 추가로 제기한 것이다. 이에 총무원 측은 폭로자인 성호 스님이 도리어 비구니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사찰 직원을 폭행하거나 공금을 횡령한 전력이 있는 파렴치한 승려라고 맞불을 놓았다.

이 같은 진흙탕 싸움에 불자들이 충격에 빠지고 국민 여론이 싸늘해지자 자승 총무원장은 조계사 주지 토진 스님을 해임하고 총무원 간부 전원을 교체했다. 자승 원장 스스로는 이번 사태를 참회하겠다며 무기한 108배에 들어갔다. 


ⓒ성호 스님 제공올해 초 조계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성호 스님(왼쪽). 그는 이 과정에서 전 조계사 주지 토진 스님에게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자승 원장의 자책과 자성 목소리에 진정성이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교계 안팎에서 높아만 간다. 새로 임명한 호법부장 정념 스님은 ‘도박 엄단’을 경고하기는커녕 ‘도박은 스님들의 놀이문화’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해 불교계 안팎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총무원 호법부장은 세속으로 치면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조계종 총무원 간부를 역임한 한 스님은 “불교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자승 총무원장이 용퇴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도박에 연루된 총무원장이 버티면서 종단 자정을 주문하는 한 조계종은 도박승 파문에서 헤어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총무원 간부를 지낸 또 다른 스님은 “내가 자승 총무원장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총무원장직을 용퇴하라는 서신을 최근 총무원에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이라 지금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지만 자승 원장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으면 내가 본 그의 도박업소 출입 사실을 조만간 언론에 공론화하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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