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은 ‘차르(황제)의 재등극’으로 막을 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승리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아울러 그의 승리는 ‘공명선거’를 외치는 야권과 재야 세력이 주도한 시위로 정국 혼란을 불러왔다. 예상된 시나리오대로다. 하지만 변화의 봄기운도 감지된다.

지난 3월4일 러시아 대선 결과가 나오자 일부 언론은 유권자들이 푸틴의 ‘안정과 강한 러시아 건설’ 주장을 야권이 표방한 ‘개혁과 민주화’ 호소보다 더 선호한 것이라는 분석적 논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 이번 대선 투표는 푸틴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애당초 ‘누가 승리하느냐’는 관전 포인트가 아니었고, ‘공정한 투표’ 및 ‘푸틴의 과반 득표’ 문제가 관심거리였다. 푸틴에게 맞설 후보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승리를 확신하고 크렘린 앞 붉은 광장에서 10만 지지자와 함께 지레 샴페인을 터트린 푸틴은 63.60% 득표율로 3선 대로를 열었다.


ⓒXinhua‘우리의 대통령 푸틴’이라 쓰인 깃발을 든 푸틴 지지자들.
하지만 투표 다음 날 대선 결과가 공표되자 반(反)푸틴 진영은 즉각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 함께 모스크바 중심가 푸슈킨 광장에 모여 ‘공명선거를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치며 시위를 이끌었다. 애초 10만명 참가를 예상했으나 2만명이 참가하는 데 그쳤다. 반푸틴 지도자들이 총출동한 이 집회는 실제 선거 전에 계획·준비된 것이었다. 부정선거를 예단하고 시위를 계획한 셈이다. 사실상 곳곳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푸틴 승리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중앙선관위 개표 결과 발표와 함께 맹방인 중국이 당선 축하 인사를 전한 데 이어 미국·독일·영국·프랑스 등 주요 강대국도 푸틴 승리를 인정했다. 출구조사 결과도 푸틴 승리를 확신케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VTSIOM)’은 푸틴이 58.3% 득표할 것을 예상했고, ‘폼(FOM)’ 여론조사 기관도 푸틴 득표율이 59.3%라고 확인했다. 실제 득표와 약간의 오차가 있지만 당락 여부와는 무관한 수치다.

러시아 트위터를 보면 푸틴에 대한 반감을 담은 글들을 접하게 된다. 그간 푸틴 진영이 저지른 업보가 아닐까 한다. 3선 꼼수, 야당 탄압, 언론 탄압 및 언론 플레이, 부정선거 등을 비롯해 과거 국가보안위원회(KGB) 경력과 권위적 통치 스타일까지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해 12월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시위 규모가 커지고 잦아진 것은 푸틴을 등진 국민이 그만큼 많아졌음을 방증한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로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세계 언론들은 승리를 축하하는 붉은 광장에서 푸틴이 보인 눈물을 도마 위에 올렸다. 감격의 눈물, 믿지 못할 모스크바의 눈물, 소통의 마음 등등 수많은 심리 분석이 난무했다. 실상 푸틴 자신은 매서운 바람 탓에 생긴 생리적 현상이라 해명했다. 하지만 3선 도전에 성공한 찰나, 만감(萬感)이 교차한 눈물은 아니었을까. ‘왜 국민은 내 애국적 정열과 능력을 전적으로 믿어주지 못하는 걸까?’ 국수적인 민족주의 성향의 푸틴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이들을 자극하는 ‘강한 러시아’ 슬로건으로 승리는 했지만, 70% 이상의 득표율로 당당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1·2차 대선 때와는 다르다. 확연히 달라진 지지율과 국민 의식에 푸틴이 격세지감을 느꼈을 법하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재정 확보 시급

대선 승리 직후 푸틴이 여타 후보자들을 교외 별장에서 면담하고 협력을 부탁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라 보인다. 일각에서는 푸틴의 정치 스타일 변화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기도 한다. 유권자의 변화에 맞춰 푸틴 또한 일방통행식 정치에서 벗어나 쌍방향 소통 정치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5월로 예정된 푸틴의 ‘차르 재등극’에는 험난한 노정이 기다린다. 국민 의식과 사회 변화에 따른 점진적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당장 논공행상 과정에서 벌어질 측근 및 내부 세력 간의 심각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특히 푸틴의 양팔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과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 간의 비틀린 알력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또 푸틴은 이데올로기 종식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급부상하며 G2로 등극한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물론 요원한 일로 보이지만 일단 ‘강한 러시아’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이상 분명한 제스처는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석유·가스 등의 국제 원자재 가격이 관건이다. 더불어 후진국형 자원 수출국에서 탈피하기 위해 과감히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과거 권위주의적 구태에서 벗어나 시급히 체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반푸틴 인사들은 ‘아랍의 봄’이나 ‘색깔 혁명’ 등 시민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변화와 개혁만이 푸틴 정권의 생명선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기자명 정다원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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