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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마루타' 실험 최대 수혜자는?

차기 정부의 영어 정책은 '강남'으로 표상되는 한국 사회의 경쟁 질서를 공고히 하면서 자기 희생을 감수하며 과감하게 조기 유학을 보낸 중간 계급을 구원하기 위한 시혜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영미어학부) 2008년 02월 19일 화요일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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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지난 2월1일 인수위의 영어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전국교과모임연합 및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원.
 
 
전공이 문화 연구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영어에 한발 걸쳐 밥을 벌어 먹고사는 처지에서 차기 정부의 ‘영어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착잡한 심정이 앞선다. 전공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 지 몇 년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영어회화’깨나 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살다온 학생들이 학기말이면 어김없이 토로하는 말이다. 자기들 딴에는 영어 발음도 유창하고 듣기도 완벽하기 때문에 영어쯤이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영어로 전공 수업을 해보니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더라는 것이다.

이게 누구 말대로 학생들이 ‘오렌지’ 하나 제대로 발음을 못해서 생기는 현상일까? 최근 인수위에서 제기한 ‘영어 정책’은 단순하게 영어 교육을 바로잡자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영어를 잘하면 외국인 투자자도 쉽게 유치하고 관광객도 많이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즐겨 제시되는 게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제공하는 자료이다. 정부 문건과 언론에 즐겨 인용되곤 하는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력 수준은 늘 아시아에서 하위권에 맴돌고 특히 영어 구사력에선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PERC가 도대체 어떤 단체인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봐도 미국 국적을 가진 로버트 브로드풋이라는 사람이 1976년 홍콩에서 설립했다는 소개 이외에 특별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이런 ‘미지’의 출처에서 흘러나온 자료에 근거해서 한국은 영어 구사력 때문에 세계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로 ‘낙인’ 찍혀 있는 셈이다. 이런 모호한 자료에 근거한 믿음은 생각보다 강고하다.

2월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대중 고문의 칼럼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 땅에 건너간 어머니들의 ‘한탄’을 거론한다. 공교육에서 6~8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벙어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어머니들이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기러기 가족의 이런 ‘참상’을 알린 뒤에, 칼럼은 갑자기 이 문제가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외국기업과 거래를 하는 기업체 직원, 외국에서 사는 이민자, 첨단기술과 선진화된 지식을 습득해야 할 기술인 등이 영어를 잘 못해 빚어지는 손실이 곧 국가적 낭비라며 개탄한다.

   
 
ⓒ뉴시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 위원장(왼쪽 사진 왼쪽)이 1월30일 열린 ‘영어 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 방안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자, 여기에서 퀴즈. 유학생, 상사 직원, 이민자, 기술인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과 국가적 낭비를 줄이기 위해 온 국민이 ‘영어 마루타’ 실험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답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모든 한국인이 영어가 필수인 ‘전문직 종사자’의 애로사항까지 고려해 손수 영어를 배워야 할 까닭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영어는 수출용 아닌 내수용?

물론 나날이 국제화되는 세상에서 국제어인 영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옳은 명제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치 ‘경제를 살리자’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해서 ‘경부운하 건설’이 저절로 옳은 사업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대체 왜 이런 논리적 오류가 생기는 걸까? 그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국가의 중대사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의 영어 교육 해프닝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차기 정부에서 추진하겠다고 내놓은 ‘영어 몰입 환경’이라는 것은 언어 교육 이론을 어설프게 끼워 맞춘 수사학일 따름이다. 아마 정책을 내놓은 당사자도 이런 엉성한 혁신 방안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처음부터 실패할 게 빤한 정책을 왜 밀어붙이려는 걸까? 영어를 범국민적 문제로 확대했을 때 이득을 볼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할 필요가 없는 이들까지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몰입 환경’을 만든다면, 영어는 새로운 경쟁 지표로 각광을 받을 게 뻔하다. 지금까진 일부 기업에서나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고 상상해보자. 박진영과 신해철을 비교하는 김대중 고문의 칼럼은 그 결과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영어가 없다면 둘은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는 인기 가수이다. 그런데 영어가 개입하는 순간, 신해철은 박진영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수로 전락한다. 영어를 국가 경쟁력과 동일시하는 이들에게 박진영은 뉴욕으로 나가 세계인의 음악과 교류하는 우수한 인재이다. 그런데 이처럼 ‘국제적인’ 인재 박진영이 한 일이 뭔가? 김 고문조차 칼럼에서 인정하듯 ‘한국의 대중음악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한 수준이다.

이처럼 차기 정부나 그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영어’는 수출용이라기보다 ‘내수용’이다. 이걸 통해서 이득을 볼 당사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영어를 잘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했던 영어가 졸지에 ‘영어 전문교사’라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적 수단’이 되는 것이다.

결국 차기 정부의 영어 정책은 ‘강남’으로 표상되는 한국 사회의 경쟁질서를 더욱 공고하게 하면서, 이런 경쟁 구도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중간 계급을 구원하기 위한 시혜이다.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과감하게 조기 유학을 보낸 ‘중간 계급 기러기’들은 훌륭하게 교육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기 뜻을 이루는 것과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정말로’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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