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중앙정보국(CIA)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첩보 요원들이 사용했던 특수 장비를 공개했다. 봉투를 열지 않아도 우편물 내용을 알 수 있는 특수 핀셋, 비밀번호가 내장되어 있는 화장품 상자, 동전, 볼펜, 소형 카메라 등이었다. ‘찰리’라는 이름으로 통신장비를 탑재한 채 원격조종을 통해 물속을 이동하며 정보 수집을 하는 물고기 모양의 장비,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정보 수집을 하는 잠자리 모양의 장비도 눈길을 끌었다. CIA는 이것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나 냉전시대에 사용된 장비라고 소개했다.

이런 장비들이 그 시절 나온 것을 보면 현대 정보전에서는 훨씬 더 첨단 장비가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미국은 첩보위성을 띄워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전략 지역을 초정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은 물론 유·무선 전화와 팩스 등의 전파를 포착해낼 수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시장에서 파는 물건의 종류를 미국에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해 미국의 통신장비 전시 기획사인 텔레스트래티지스가 다섯 차례 제품 전시회를 열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이 중 워싱턴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35개 미국 연방기관 직원이 참여했고 43개 나라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이 행사에서는 휴대전화 수백 개를 동시에 추적하고, 이메일 수만 통을 감시하는가 하면, 컴퓨터가 사용자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하는 첨단 감시 기술이 단연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미국중앙정보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특수 장비들.

이 회사는 일명 ‘감시산업’의 대표 주자로 고객들은 누군가의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는 이런 제품과 기술을 판매하는 서구 업체가 급증했다며 25개국 160개 업체의 이름을 공개했다. 공개된 업체 홍보물에 따르면 독일 엘라만 사는 개인의 위치나 그의 동료들, 정치적 반대자 그룹의 구성원 등을 식별해내는 기술을 개발했고 영국의 코범은 3㎞ 안의 휴대전화를 감청하는 장비를 개발했다. 영국 업체 감마인터내셔널은 애플 아이튠스나 어도비 아크로뱃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가장해 스파이 프로그램을 심는 기술을 보유했다. 이제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첩보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첨단 장비를 동원해 정보 수집이 가능해진 셈이다. 위키리크스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현재의 감시 기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자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위조 여권ㆍ성형수술도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아랍의 봄은 이 첨단 첩보 장비 업체들의 고객 확보를 도와주었다. 성난 민중의 시위에 놀란 아랍 각국은 이들 장비를 앞 다투어 구입했다. 지난해 격한 시위를 경험한 바레인 정부의 경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럽으로부터 감청 장비를 도입함으로써 시위 자체가 열리지 않도록 감시 중이다. 한창 내전 중인 시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외신조차 입국할 수 없을 만큼 경계가 삼엄한 시리아에서는 반정부 활동가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뉴스를 외부로 내보내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리아 정부는 서방 세계로부터 특수 감청 장비를 도입해 이런 활동가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라미 나클레 씨(29)는 지난해 온라인 신문에 시리아의 인권 실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밀경찰에 끌려갔다. 그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여러 지역을 옮겨다녔지만 비밀경찰은 그를 찾아냈다. 시리아 정부가 최첨단 감청기술로 그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나클레 씨는 “감시 시스템까지 수출하는 기업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시리아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은 지난 1월,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훔쳐볼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시리아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국도 감청 장비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터넷을 통해 오간 이메일이나 파일, 채팅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데이터 감청 장비 46대가 새로 도입되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재윤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감청설비 인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보 및 사정당국이 도입한 패킷 감청기는 2009년 13대, 2010년 22대였다. 지난 1월23일에도 11대를 도입했다. 패킷 감청기 외 유선전화 감청 장비도 2008년 이후 현재까지 11대가 새로 도입됐다. 이 감청기는 주로 패킷을 감청하는 것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내는 인터넷을 통한 이메일이나 파일, 채팅이 모두 감청 대상이다.


두바이 암살 사건의 용의자가 CCTV 앞에서 웃고 있다.

이런 최첨단 장비뿐 아니라 현대 첩보전에서 많이 이용되는 것이 여권이다. 2010년 1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한 호텔방에서 하마스 간부 마흐무드 알마부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으로 추정되는 암살단원들에게 피살된 채 발견됐다. 두바이 경찰 조사 결과 암살단의 배후에 모사드가 있으며 이들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영국인 12명을 비롯해 아일랜드·프랑스·독일·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위조 여권을 이용해 두바이를 드나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어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 외교관을 추방하기도 했다.

전직 모사드 요원인 빅터 오스트로프스키는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 ABC방송 인터뷰에서 모사드가 공작에 사용할 목적 아래 상습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여권을 위조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요르단의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의 다른 정보기관들도 전혀 다른 이름의 자국 여권을 두세 개 가지고 있는 것은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두바이 암살 사건의 CCTV 화면에는 게일이라는 여자 암살원이 등장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보이며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부린다. 나머지 암살조 11명도 마찬가지로 얼굴이 모두 공개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임무가 끝나면 성형수술을 하고 새로운 인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한다.

세계 감시기술 시장 규모는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크게 성장해 연간 50억 달러(약 5조65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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