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톰과 제리〉에는 영리한 쥐 제리에게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고양이 톰이 나온다. 톰은 제리를 잡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내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와 이란 정보기관 모이스(MOIS)의 이름이 거론되는 최근의 사건들은 이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한다. 이란 핵무기 의혹을 두고 벌어진 첩보전에서 모사드가 영리한 제리처럼 거의 늘 성공해온 반면 모이스는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아둔한 톰처럼 연달아 작전에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첩보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두 정보기관의 그림자 전쟁이 요즘 국제 뉴스의 단골손님이 되고 있다.

지난 1월11일 오전 8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부소장인 핵과학자 무스타파 아마디 로샨(32)이 은색 푸조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중이었다. 로샨은 이란 명문가 출신으로 샤리프 공대 재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혁명수비대원이자 핵과학자로서 문무를 겸비했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날 출근길 정체가 심한 테헤란 시내를 막 지날 무렵 로샨 부소장이 탄 자동차 근처로 복면을 한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가 접근했다. 그러더니 오토바이 뒷자리에 있던 사람이 차에 무언가를 붙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로부터 9초 뒤 폭탄이 터졌다. 로샨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겨우 몇 초 사이에 일명 자석 폭탄에 암살된 것이다.

ⓒAP Photo1월11일 모사드로 추정되는 요원들이 이란 핵과학자 로샨을 암살했다.

모사드, 작전 뒤에도 증거 안 남겨

이뿐 아니다. 지난 2년간 이란 핵 관련 기술자 4명이 5건에 걸친 폭탄 테러로 희생되었다. 모두 인근의 교통 상황이나 지리에 정통한 오토바이 암살범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아직도 그 내막이 밝혀지지 않은 폭발 사건으로 탄도미사일 개발 총책임자인 장군이 사망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은 모두 이란 영토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 배후로 거론된 것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다.

영국 〈더 선데이타임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고전적인 암살 작전에 따른 것이었다. 단순한 작전 같아 보이지만 몇 달 동안 정보를 수집하고 훈련한 팀이 이뤄낸 성과였다. 암살조가 체포됐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 또한 모사드를 지목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은 이른바 ‘NCND(인정도 부인도 않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모사드는 건국 1년 뒤인 1949년 이스라엘 초대 총리였던 벤 구리온이 정보기관들을 중앙에서 관장할 목적으로 창설했다. 현재 모사드 국장인 타미르 파르도를 포함해 역대 수장 11명이 모사드를 지휘했다. 미국 대통령 암살도 가능하다는 모사드는 그 옛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교훈을 바탕 삼아 ‘안보는 즉 생존이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그간 모사드는 숱한 암살 연루 의혹을 받아왔으나 완벽한 작전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기로 유명하다.

2010년 1월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 사건이 대표 예다. 그는 당초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부검 끝에 내려진 결론은 전기충격에 의한 살해였다. 심장마비를 가장한 비밀스러운 암살 작전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지난해 1월 모사드 국장으로 취임한 타미르 파르도는 이런 비밀전쟁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로샨을 포함한 이란 핵과학자 암살 작전에도 그가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AP Photo2월14일 모이스로 추정되는 요원들이 방콕에서 폭탄 사고를 일으켰다.

이어 이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란 정보기관 모이스는 영화처럼 멋지지 못했다. 지난 2월14일 타이 수도 방콕 수쿰윗 지역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한 집의 지붕이 날아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집에 살고 있던 이란인 3명이 집 안에서 몰래 폭탄을 다루다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집에서 뛰쳐나온 이란인이 피를 흘리며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놀란 기사가 승차를 거부하자 그는 택시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 소리에 놀라 달려온 경찰에게도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운 나쁘게 폭탄이 가로수에 맞아 튕겨 나오면서 폭발해 이 이란인은 한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이 사건으로 총 5명이 다쳤으며 타이 경찰은 사고 당일 용의자 3명 중 2명을 체포했다. 나머지 한 명은 말레이시아로 달아났다.

이 황당한 폭탄 사고는 이란 정보기관 모이스가 타이 주재 이스라엘 외교관을 겨냥해 암살을 준비하다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13일에도 인도 뉴델리와 조지아(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서 이스라엘 대사 등을 노린 테러가 각각 발생했다. 인도에서는 이스라엘 대사 부인과 운전사 등 4명이 다치고, 조지아에서는 폭탄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또 같은 달 아제르바이잔에서 이스라엘 대사 등을 공격하려 한 혐의 등으로 남성 3명이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타이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란인 용의자 3명은 암살팀으로, 이스라엘 대사를 포함한 외교관들이 표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들 3명이 이스라엘 외교관들의 차량에 폭탄을 부착하려 했다는 것이다. 타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인도와 조지아에서 일어났던 폭탄 테러 때 사용된 폭탄과 이번 방콕 폭탄 테러에 사용된 폭탄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란 모이스는 벌이는 작전마다 되는 일이 없다.


모이스, 제3국에서 작전해 ‘민폐’

최근 모이스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쿠웨이트 일간 〈알자리다〉는 지난 2월16일 이스라엘의 고위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공조해 싱가포르에서 바라크 장관 암살을 모의했으나 사전에 발각돼 실패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싱가포르 보안 당국이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가 제공한 첩보에 근거해 관련자를 사전 체포했다”라고도 전했다. 3명으로 구성된 이들 암살조는 에어쇼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한 바라크 장관의 동선 정보를 입수하고 숙소에서 암살을 계획했다가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암살 작전을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사전에 족족 적발되는 바람에 모이스는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이란 정보기관 모이스는 1984년 창설 이후 450차례 이상 국내외 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나라나 정보기관 활동 내용은 극비에 속하지만 특히나 모이스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을 만큼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전 수행 능력은 모사드에 비해 너무도 미숙하고 허술하다. 타이 사건만 하더라도 폭탄 전문가가 투입된 폭탄 암살 작전이었음에도 어이없게 준비 과정에서 폭탄이 미리 터져버리는 실수가 빚어졌다. 작전 실행 단계까지 갔더라도 인도 주재 이스라엘 외교관 부인 부상 사건에서 보듯이 확실하고 깨끗하게 처리되지 못했다. 이란은 2월 한 달에만 총 네 차례 테러를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한 셈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질 뻔한 이란의 이스라엘 외교관 암살 작전은 이렇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는 모이스의 실력이 모사드에 비해 현저히 처지는 수준임을 말해준다.

암살 표적을 정하는 데서도 모이스는 모사드보다 한 수 아래이다. 모사드는 정확하게 이란 핵과학자만을 목표로 하지만 모이스는 불특정하게 이스라엘 외교관을 노렸다. 모이스가 암살 작전 지역으로 자국이나 이스라엘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하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폭탄 사고가 발생한 타이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외국인 관광이 국가의 주요 수입원이다. 이런 나라가 졸지에 폭탄 테러에 휘말리면서 관광산업에 타격을 입게 됐다. 또 폭탄 사건의 용의자가 말레이시아로 도망가는 바람에 말레이시아도 용의자 검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 암살 기도가 사전에 적발된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이들 타이 폭탄 사고 용의자들은 서울과 푸껫을 거쳐 방콕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외교관이 있는 나라는 모두 이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이스라엘은 위험 강도가 높지만 항상 이란 현지에서 폭탄 암살을 시도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불똥이 튀지 않게 한다. 자연히 ‘민폐 이란’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이란이나 이스라엘 양국은 모두 전면전이라는 카드를 쓰기 힘들다. 국제사회는 지난 10년간 벌어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지쳤고 경제 위기로 정신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전쟁이 벌어지면 세계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이란이나 이스라엘 공히 어느 한편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기가 힘들어 첩보 암살전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드는 것이다. 양국은 서로를 암살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동시에 자국의 관련성은 강하게 부인한다. 정황만 있고 실체는 없는 그림자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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