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TV 드라마는 ‘상상’의 쾌감을 제공한다. 특히 사극에서 사료를 기막히게 재조합하고 무한히 확장해줄 상상의 힘은 대단하다. 그런데 요즘 〈이산〉은 사료보다 폭 좁은 용두사미 스토리로 시청자를 맥 빠지게 한다.
별별 일이 다 생긴 일주일이다. 지난 일요일 밤에는 난데없이 숭례문이 불타는 뉴스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더니, 울산에서는 계모가 6세 아들을 때려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인터넷도 난리다. 이명박 당선자는 200억원에 달하는 숭례문 재건 비용을 국민 성금으로 마련하자고 한마디 날렸다가 된통 비난에 시달렸다.

저 대통령이 가고 이 대통령이 오는 변화무쌍의 시기여서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감시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현동 마님〉이 〈무한도전〉을 비아냥거렸다, 혹은 한 방송사가 숭례문이 무너질 때 〈음란서생〉을 틀었다고 해서 욕을 먹더니,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답답증 재판대에 올랐다. 바로 〈이산〉이다.

영웅 만화극같이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기대했건만

결정적 문제는 최근의 〈이산〉이 그야말로 ‘용두사미’ 드라마라는 점이다. 이런 거다. 얼마 전 〈이산〉은 세손을 음해하려 했던 세력의 배후가 중전 정순왕후라는 사실이 영조에게 발각되며 뭔가 통쾌한 복수극이 벌어지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웬걸, 영조는 이렇다 저렇다 이유를 들어 사태를 조용히 무마함으로써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을 픽 빼버렸다. 그리고 42회, 조정 중신들과 정순왕후가 또다시 세손을 끌어내리려다 그들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영조의 서슬 퍼런 분노 때문에 모두 옥에 갇히는 대역전극이 벌어진다. 자, 이번에는 뭔가 보여주겠지. 하지만 영조의 치매 증세가 세상에 노출될까봐 두려워한 세손은 이번에도 역시 조용히 풍선의 바람을 뺀다. 네티즌 쓴소리, ‘이래 가지고 대체 뭘 보란 말이냐’는 것이다. 맞는 소리다.

우리에게 텔레비전 드라마는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일까. 바로 ‘상상’이다. 상상이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뭐든 재구성하고 공상해 신나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산〉처럼 역사적 배경을 대중이 알고 있는 사극일수록 그 사료를 기막히게 재조합하고 무한히 확장해줄 생산적 상상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상상이란 녀석은 한껏 위태로운 것이기도 하다. 나훈아 추문이니 별별 해괴한 소문도 얼마간은 대중의 상상을 거쳐 나타난 기이한 영웅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이산〉의 용두사미 스토리도 심판대에 올랐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비어 있던 영역을 상상하는 건 무엇보다 신나는 쾌감의 원천이다. 당초 〈이산〉은 정순왕후와 조정 대신들의 한 무리, 그리고 세손·홍국영·대수·송연 등이 똘똘 뭉친 또 하나의 무리가 마치 한 편의 영웅 만화극처럼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벌인다는 기획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 기획이란, 매번 에피소드에서 우리에게 격한 상승의 쾌감으로 다가왔어야 한다.

요즘의 〈이산〉은 제 구실을 해야 할 상상의 무장 대신 상상하지 않는, 그래서 도리어 현실의 사료보다 폭이 좁은 이야기로 우리를 풀 죽게 만든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두 번밖에 부르지 못했다는 송은이의 ‘상상’이 떠오른다. “그대도 나와 같은 생각하는지 매일 혼자서 상상만 하죠. 새하얀 집을 함께 꾸미고 작은 정원을 가꾸는 꿈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세상 모든 걸 가진 거야.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어색하긴 해도 난 나도 몰래 웃음 지으며 행복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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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지훈 (FILM2.0 편집위원·영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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