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호흡해온 삼촌 팬이라 자부해왔기에 더욱 기가 막힌다. 소녀시대도, 아이유도 아닌 시커먼 사내의 이름을 트위터에서 매일 한 번씩 연호하고 있어서다. 지난 1월11일 이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사내의 이름은 박정근이다. 사실 나는 박정근이 누군지 잘 모른다. 일면식도 없다. 올해 스물다섯 살인 그는, 서울에서 아버지의 사진관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사진가라고 한다. 박정근씨는 1월11일 구속되었다.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 검사 문현철과 부장검사 김영규에 따르면, 박씨의 혐의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의 요지’를 보자.

“피의자는 2010. 3.21. 트위터에 ‘seouldecadence’라는 아이디로 계정을 개설하여 북한 조평통에서 체제 선전·선동을 위하여 운영하는 우리 민족끼리 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등에 접속, 이적 표현물 384건을 취득·반포하고,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 팔로어들에게 반포하였으며, 학습을 위하여 이적 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함.”


1월20일 구속적부심사까지 기각되면서 박정근씨는 결국 설날을 구치소에서 보냈다. 과연 그가 이렇게 고초를 겪어야 할 만큼 큰 죄를 범한 걸까. 박씨는 국가보안법의 취지대로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그럴 의도를 주관적으로 갖고 있었”을까. 그가 트위터에서 날린 문장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까. 이 사건을 보도한 대다수 언론, 심지어 〈뉴욕 타임스〉 〈알자지라〉 같은 해외 언론까지 입을 모아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박씨의 발언들이 북한 체제에 대한 철저한 조롱이고 농담이라는 점이다. 이건 그저 그가 쓴 트위터 글 몇 개를 읽어보기만 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는 사회당의 당원이다. 사회당이 어떤 당인가. 남한 좌파 중 가장 북한 체제에 비판적일 뿐 아니라, 진보 진영 내 이른바 ‘종북 세력’에 대해서도 일관되고 치열하게 비판해온 세력이다.

하지만 박정근씨는 이러한 사정을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1월16일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쓴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체제 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입니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


국가보안법과 시민의 저 아득한 수준 차이

두 문장의 짧은 글이지만, 의미는 크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수사받으며 정신병 치료를 받을 정도로 괴로워하면서도 박씨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슬쩍 굽혀 체제의 자비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반북 성향을 국가에 맹세함으로써 면죄부를 받기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헌법적 권리를 온 힘을 쥐어짜 주장하고 있었다. 누구나 떠들어대는 ‘국격’, 다시 말해 ‘나라의 품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국격은 삼성의 휴대전화 판매량 따위의 알량한 숫자들로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 국격이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재산·지위·재능과 상관없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의-그것은 대개 헌법에 표현되어 있다-를 몸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증명되고 인준되는 가치이다.

박씨가 가장 고귀한 방식으로 시민정신의 정수를 보여준 반면, 국가보안법은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자신의 몰이성과 야만성을 세계에 노출했다. 이 격차는 아득할 정도다. 21세기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국가보안법 폐기해도 간첩죄로 간첩 잡을 수 있고, 내란죄로 내란 음모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대다수 시민이 잘 안다. 생사람 잡지 말고 사라져다오, 국가보안법.

기자명 박권일 (〈88만원 세대〉 공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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