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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그늘에 있기를 마다않던 그 사람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별세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그는 민주화의 산 증인이자 역사였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제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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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2월30일 새벽 5시30분 영면했다. 직접 사인은 폐혈증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아온 김 고문은 지난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했다. 응급한 상황이 아니어서 치료만 잘 받으면 거뜬히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폐렴 등 합병증이 겹치면서 다른 장기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의료진은 12월29일 오전 김 고문의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고인의 마지막은 부인 인재근 여사와 가족, 민주통합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과 이종걸 의원 및 보좌진들이 지켰다. 이종걸 의원은 새벽 5시51분 올린 트위터에서 김 고문의 부음을 전하며 “인재근 형수님이 눈을 감겨 드렸다”라고 전했다. 


   
ⓒ뉴시스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인 한반도재단 김근태(64) 이사장이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치료를 받던중 병세가 악화돼 30일 새벽 5시 30분깨 별세했다. 김 상임고문은 군사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5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인한 각종 후유증을 겪어왔다. 사진은 생전 회의장에 들어서며 거수 경례하는 모습.


민주통합당 오종식 대변인은 “김근태 의장은 민주화의 산 증이이었고 그 자체로 민주화의 역사였다. 개혁의 소신을 굽힘없이 추진해 당을 반석위로 올려놓은 정치가였다. 고인이 걸어오신 길, 지니신 높은 뜻 고이 간직하겠다”라고 애도했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 역시 “혹독한 시절의 모진 고문이 질긴 고통이 되었고 결국 그분을 일찍 떠나 보내드리게 된 사실이 더 없이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라며 “그분의 뜻처럼 한반도에 평화와 복지가 넘쳐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지난 밤 중환자실을 찾았던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지난날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화는 아직 속속들이 정착되지 않았고, 우리가 온몸으로 외쳤던 통일은 아직 감이 잡히지 않고 있다. 이 일을 선생이 남긴 뜻으로 받아들이고, 헛되이 하지 않겠다”라고 글을 남겼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10시부터 받는다.


 
<2보>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한반도재단 이사장)의 병세가 악화돼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12월29일 확인됐다. 

한반도재단 관계자는 "김 상임고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현재 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장기들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합병증이 급속히 진행됐다"라고 밝혔다.

김 상임고문은 지난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최근 상태가 호전되면서 곧 쾌차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12월28일부터 폐렴 등 2차 합병증이 나타나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도 이 날 트위터를 통해 "김근태 선배님이 위독하다십니다. 오늘이 고비일 듯하답니다"라고 급보를 올렸다.


   
ⓒ뉴시스
김근태 상임고문은 군사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5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인한 각종 후유증을 겪어왔다. 사진은 홍성교도소 출소직후 모습. (사진=한반도재단 제공)


<1보>
12월8일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입원 관련 알림’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내용은 짧았다. 김근태 이사장(64·민주당 상임고문)이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는 것,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다고 했다. 그러나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면회와 취재를 사양한다는 내용이었다.

빛이 나는 자리보다는 그늘진 자리를 ‘잠행’하며 대통합의 산파 구실을 해왔던 김 상임고문의 입원 소식에 정치권 역시 술렁였다. 모두가 애써 말하지 않을 뿐 대개가 알고 있었던 그의 파킨슨병 투병 사실 역시 이번 일로 기정사실이 되었다. 운동장애, 떨림, 인지·기억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파킨슨병의 발병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심한 외상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문 피해자 중에 파킨슨병 환자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애초 김 상임고문 측은 입원을 언론에 알릴 계획이 없었다. 입원을 예상하고 들어간 병원이 아니었다. 그는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다. 매년 10~11월이면 연례행사처럼 ‘고문 몸살’을 심하게 앓던 그였다. 지인과 가족 모두 으레 몸살이 길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11월 중순쯤 MRI를 찍었다. 뇌 정맥에 혈전이 쌓여 있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혈전을 용해하는 약물에 김 상임고문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쇼크가 왔다.

12월10일에는 그의 딸 병민씨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버지인 김 상임고문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별별 소문이 날 게 분명했다. 억측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반도재단 측은 그의 입원을 언론에 알렸다. 조촐하게 치르려 했던 결혼식에는 ‘병문안’ 대신 찾아온 손님으로 북적였다. 


   
ⓒ시사IN 백승기
2004년 9월19일 김근태 이사장(오른쪽)과 부인 인재근씨(왼쪽)가 자선 바자회에 참석했다.


최상명 한반도재단 사무총장은 김 상임고문이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힘내라’는 말에는 ‘고맙다’는 말로 대답해주고, 웃어주는 등 짧지만 대화도 가능하고 인지도 한다.” 현재 의료진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치료하는 동안 올 수 있는 폐렴 따위의 기관지·구강 감염이다.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경직된 근육을 키우기 위한 재활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적어도 12월 한 달 동안은 집중 치료를 받고, 향후 6개월간도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최 사무총장은 전했다.

그의 투병은 고문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시절 민청련이 이적 단체로 규정되면서 23일간 하루 5~6시간씩 고문을 견뎌야 했다. 여덟 차례 전기 고문과 두 차례 물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그 자체로 독재 정권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 상태로 고문대 위에 묶여졌습니다.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본인에 대해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습니다.”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 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5년 12월19일 법정에서 김 상임고문이 증언한 내용의 일부이다. 고문당하는 내내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원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 당시를 ‘짐승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18대 총선 이후 줄곧 대통합론 주창

부인 인재근씨가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독재 정권의 악랄한 고문 사실을 녹음해 미국 언론에 전하자 이는 곧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의 ‘세계의 양심수’에도 선정됐다. 어눌한 말투, 떨리는 손,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고개를 몸과 함께 돌려야 하는 불편함 등 김 상임고문의 몸에 남은 고문 후유증을 두고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의 ‘훈장’이라고 했다.


   
ⓒ연합뉴스
2006년 11월7일 출소하는 ‘고문 경관’ 이근안씨.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심문은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재야에서 시작해 대권 주자로까지 정치적 행보를 넓혀나가는 데 그 ‘훈장’은 때때로 걸림돌이었다. 대중 호소력이 약하다는 세간의 지적도 고문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김 상임고문을 ‘저평가 우량주’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곤 했다.

그의 투병이 고문과 관련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오면서, 2010년 2월 <일요서울>과 가졌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인터뷰 역시 사람들 사이에 다시 논란이 됐다. 이근안 전 경감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김 상임고문은 그의 ‘예술’로 인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김 고문이 ‘설욕전’을 다짐하던 내년 4월 총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는 올해 초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싶고,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를 이뤄 복지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서울 도봉갑이 지역구인 김 상임고문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낸 신지호 의원에게 1100표 차이로 분패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유력 대선 후보, 같은 지역 내리 3선 의원이라는 그의 정치 경력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패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김 상임고문 역시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출신으로 김 상임고문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유은혜 일산동구지역위원장은 안타까움으로 말을 아꼈다. “아직 출마에 대한 가부를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김 상임고문이 처한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지금과 같은 어수선하고 어려운 정치 상황에서 하실 일이 많은 분인데 입원과 투병으로 그런 부분이 희석될까봐 두렵다.”

김 상임고문은 18대 총선 패배 이후부터 줄곧 ‘대통합론’을 주창해왔다. “정권 교체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모든 계파를 아우르는 진보·개혁모임 결성을 주도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생색내지 않고,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야권 통합 논의의 물밑에 늘 김 상임고문이 있었다”라고 유은혜 위원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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