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워낙 남의 허물을 열심히 들추고 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기자끼리도 서로 흉보는 데 이골이 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씹기’ 좋은 기자는 자기가 쓴 기사를 보면서 넋을 잃는 경우이다. 기사를 읽으며 무릎을 치는 것은 약과이고, 가슴에 새기려는 듯 밑줄을 치기도 한다. ‘신이여 이걸 제가 썼습니까’라고 외치는 것은 옛날 버전이고, 요즘에는 ‘신이여 용서하소서’라고 부르짖는다고 한다. 신이 써도 그보다 잘 쓸 수는 없기에.

설마 그러랴 하는 분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 실화이다. 아닌 경우도 물론 있지만 자기 기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기자일수록 정말로 좋은 기사를 많이 쓰는 걸로 봐서 마냥 흉볼 일만은 아니다.

실험용 원숭이는 서로 감염될 염려가 있어 한 마리씩 격리하는데, 우리 안에 거울을 넣어준다. 무리 지어 살아온 원숭이의 외로움을 덜어주려는 배려이다. 하지만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영장류는 거울 속 영상이 친구가 아니라 자기라는 걸 금세 안다. 침팬지는 평소 즐겨 먹던 바나나라도 옆 친구보다 덜 주는 일이 거듭되면 바나나를 바닥에 던져서 밟아버릴 만큼 차별에 민감하다고 한다. ‘나’와 ‘너’를 구분해 인정받으려는 것은 영장류가 다른 동물과 가장 뚜렷이 다른 점이다.

불타는 인정 욕구는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에 따르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뭔가 나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실제로 너무나 바빠 같이 놀아주고 얘기할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아이는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며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폭력에 시달리면서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남자에게 계속 매달리는 여자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경우이다.

인정 욕구가 지나치다 보면 보통 사람이 항상 부총리급도 아닌 대통령급 고민을 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서울역의 노숙자마저 ‘나라도 노무현이처럼 정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염을 토하게 된다. 회사나 조직의 말단 중에는 매일같이 사장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이가 있는데 그런 이들이 바로 뒤틀린 인정 욕구라는 몹쓸 늪에 빠진 경우이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벌써 의석수의 10배가 넘는 3000명 가까운 사람이 뛴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화려하지만 거칠게 폭발하는 때다. 멀쩡한 사람의 눈이 머는 때이기도 하다. 때로는 인간의 인정 욕구가 천형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렇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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