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해 11월 이명박 후보 자녀의 위장 취업과 관련해 항의 시위를 하는 20~30대 청년단체 회원.
대한민국 '꼰대'들은 나라 걱정이 취미다. 근대국가의 시민이 나라 걱정하는 것이야 적극 장려할 일이겠다. 문제는 거기에 꼭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이란 말을 끼워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다. 이런 꼰대들이 으레 보수적일 것이라 단정해선 안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지만, 꼰대도 그렇다. 최근 들어 ‘젊은 것들’에 대한 원망과 탄식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건 오히려 이른바 범민주, 개혁 세력에서였다.

17대 대선을 막 치른 지금, ‘20대의 보수화’에 대한 걱정이 하늘을 찌른다. 어르신들 말씀을 듣다보면, ‘이노무새끼들’이 조만간 나라를 말아먹을 것만 같다.

20대는 과거에 비해 보수화되었을까. 그럴지 모른다. 대학생운동의 몰락과 더불어 청년세대가 이념적으로 우편향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들이 여러 차례 발표되기도 했다.

20대는 과연 보수화되었나

17대 대선에서 20대의 42.5%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SBS-TNS 출구 조사). 30대의 40.4%보다 높은 수치다. 게다가 이회창 후보에 대한 20대의 투표율은 15.7%로 전연령대 중 가장 높다. 20대에서 이명박과 이회창 투표율을 합치면 무려 58%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 같다. 무려 60%에 가까운 20대가 ‘토건형 신자유주의’와 ‘극우냉전주의’에 포섭되고 말았으니, 역시 꼰대들의 걱정이 사실로 증명된 것일까.

그러나 이게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우선 20대의 문국현 후보에 대한 투표율을 보자. 15.9%다. 〈시사IN〉 조사에서도 16.6%나 나왔다. 40대(4.8%)의 3배 이상으로, 30대의 9.9%보다도 훨씬 높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문국현 후보에 대한 투표율이 가장 높다. 문국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에 대한 20대의 투표율을 합하면 19.4%로 30대의 16%보다 높다. 이른바 ‘386’이라 불리는 40대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공약을 내건 두 후보에게 던진 표는 불과 8.2%다. 이들 40대는 이명박 후보를 과반수 넘게 지지(50.6%)했다.

20대의 투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당 후보인 정동영에 대한 투표율이다. 20.7%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다. 〈시사IN〉 조사에서는 13.4%으로 더 참혹한 수치를 기록했다. 심지어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가장 극심하다는 50대(23.5%)보다도 낮다. 정동영에 가장 적게 투표하고 이명박과 이회창에 표를 몰아주었으니 여당에 할 수 있는 한 가장 뼈아픈 타격을 가한 셈이다.

즉, 20대는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로 고통받았던 지난 5년에 대해 어떤 세대보다 혹독하고 냉정하게 심판했다. 또한 20대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니 백만민중대회 같은 시대착오적 구호를 들고 나온 ‘삼수생’ 권영길에게 3.5%(30대는 6.1%)만 던져줌으로써 ‘이제 정신 좀 차리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했다. 17대 대선을 주도한 흐름이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 다시 말해 회고 투표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20대의 투표율은 그 흐름에 가장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20대 보수화 담론은 ‘386’의 도착증

명심하자. ‘20대가 너무 보수화 됐다’는 오버도, ‘20대는 여전히 진보적’이라는 오해도 모두 해롭다. 지금 유통되는 20대 보수화 담론들은 구조적 문제를 명징하게 드러낸다기보다 어떤 현실을 은폐하는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바로 ‘386’의 보수화다. 40대의 절반 이상이 이명박을 지지하고, 13.3%가 이회창을 지지했으면서도 20대가 문제란다.

 
20대가 아무리 보수화됐기로서니 ‘386’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즉, 이건 일종의 도착증이다. 386들은 자신들이 정작 이명박과 이회창에게 화끈하게 표를 던졌으면서도 ‘20대의 보수화’에는 혐오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사회적 지위를 선점한 세대로서의 물질적 쾌락은 그것대로 추구하면서 한켠에선 앙상한 80년대의 추억을 끝없이 마스터베이션하는 것이다. 그 결과 20대 보수화 담론은 그들의 이중적 욕망에 의해 이리저리 소비될 뿐이다.

대선 유세 기간 중에 청년백수 한 명이 이명박 후보 지지연설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살려주이소”라는 그의 외침은 심금을 울렸다. 반면 많은 사람은 청년백수의 절박한 상황이 어째서 이명박 지지로 이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청년실업자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일갈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 후보 아닌가.

영상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까뮈의 『이방인』이었다. 주인공 뫼르소는 칼날에 반사된 햇빛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에게 총을 쏜다. 88만원 세대의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건 뫼르소의 행동처럼 부조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386’ 세대에 비해 훨씬 솔직했고 이성적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5년도 예외가 아니다. 이념보다 손익계산에 더 익숙한 88만원 세대다. 그들의 복수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기자명 박권일 (〈88만원 세대〉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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