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말미오름 정상에 서면 눈 아래 늘어선 오름들의 장관이 펼쳐진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지난 9월8일 말미오름~종달리~성산봉에 이르는 15km 길이의 걷는 길을 시범 개방했다. 이 길을 다녀온 이유명호씨의 소감문을 싣는다. 〈시사IN〉은 10월20~21일 독자들과 함께 이 길을 따라 걷고자 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성산 쪽 올레 길을 처음 개방하던 날, 흥분성 신경의 조작으로 날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탔다. 출발지는 오름 병풍 아래 시흥초등학교 운동장. 새파란 잔디구장을 보고 ‘와~와’ 소리를 질렀다. 주최 측은 으쓱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감탄사는 끝까지 계속될 거우다.” 진담이었다.

돌담을 어루만지며 오르던 등성이에서 뒤돌아본 들판은 짙푸른 나무들과 검은 흙밭으로 수놓은 색 조각보이다. 오름 정상은 360° 파노라마로 거침없이 광활하다. 탄성에 신음소리(?)까지 보태졌다. 앞자락은 청옥빛 바다에 우도와 성산이 듬직하게 떠 있고 뒷자락에는 한라산이 큰 팔을 벌려 세상을 품고 있다. 대지를 휘몰아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따귀를 맞았다. 온몸이 펄럭펄럭 털렸다. 달팽이의 등짐처럼 무겁던 삶이 훌쩍 가벼워졌다.

ⓒ시사IN 한향란올레 길 순례에 참가한 한의사 이유명호씨.
오름에서 오르가슴을 만끽하고 내려오는 길, 발걸음도 가볍게 부르는 동요 메들리. “아기구름 나비구름 떼를 지어서 딸랑딸랑 구름마차∼.” 길은 학예회 때 명랑 시절로 시계 바늘을 되돌려놓았다. 오솔길 지나 아스팔트를 건너 종달리로 들어서니 고향 같다. 넝쿨 담장 너머 수선화, 맨드라미, 봉숭아가 어여쁘다. 쉬다 가라며 할아버지가 건네신 얼음물과 정겨운 인심은 여행자의 행복!

조개죽이 맛있는 해녀의 집도 지나고 오후의 태양도 기울어갈 때 마침내 일출봉 발치에 누운 광치기 바닷가에 도착했다. 해단식이다. 바닷물에 발 담그고 윗몸은 바위에 벌렁 누우니 따끈한 돌판구이다. 살아 있으니 걸을 수 있었다. 고맙다.

제주 올레는 9성급 길이다. ★★★★★★★★★. 별 한 개는 걷는 자의 몫!

기자명 이유명호(한의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