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저축은행 비리를 둘러싸고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집중 거론되면서 대규모 권력형 게이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 지금까지 삼화저축은행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린 권력 핵심 인사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다.

2004년 9월~2008년 4월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맡은 정진석 수석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를 펼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자주 골프를 친 사이로 밝혀졌다. 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를 앞둔 지난 1월 신삼길 회장과 ‘수상한’ 회동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6월2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삼화저축은행 문제의 뒷면에는 권력 실세가 있다. 올해 1월 삼화저축은행 위기 당시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5번지 Q 퓨전 한식당에서 회동했다”라고 폭로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이 만남 이후 삼화저축은행은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으로 전격 인수되는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삼화저축은행을 인수한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와 인수위를 거친 측근이다.
 

ⓒ연합뉴스검찰이 삼화저축은행 본사를 압수 수색하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이 자리에는 총 6명이 있었는데,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 사업가 이 아무개씨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 두 명도 유력 인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웅렬 회장과 신삼길 회장, 정진석 수석은 충남 지역 한 골프장에서 자주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지부진한 삼화저축은행 비리 수사

삼화저축은행 비리는 이처럼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할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지만, 서울중앙지검 조세금융조사부의 수사는 더딘 편이다. 삼화저축은행이 부산저축은행보다 한 달 먼저 영업정지를 당했고, 신삼길 회장을 일찌감치 구속 수감했는데도 비리 수사 성과는 뒤늦게 터진 부산저축은행만 못하다. 게다가 부산저축은행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떠맡고 나섰다. 현 정권의 핵심 실세 연루 의혹이 집중된 곳이 삼화저축은행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등 야권은 ‘보이지 않는 손이 수사의 비중 조절을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삼화저축은행 비리는 한국 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집약해 보여준다. 파렴치한 대주주와 이들을 비호한 금감원의 행태에 이어, 증권가에서 악명 높은 기업사냥꾼도 등장한다. 이들은 삼화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의 돈을 마치 자기 사금고처럼 주물렀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뒷배가 없고서는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온갖 대담한 부조리를 일삼았다. 권력형 로비의 중심에는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 외에 또 다른 인물이 자리했다. 명동 사채업자이자 조폭 출신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이철수씨(본명 이성민)가 그 사람이다.

지난 4월4일자 〈시사IN〉은 이철수씨의 정체를 처음으로 폭로한 바 있다. 코스닥 상장업체 씨모텍이 상장 폐지 절차에 들어가자 이를 비관해 이 기업 대표가 자살했는데, 그 과정에 이명박 대통령 조카사위 전종화씨와 기업 사냥꾼 이철수씨가 연루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2009년부터 전종화씨와 손잡고 무일푼으로 코스닥 상장업체 씨모텍과 제이콤을 잇따라 인수했다. 말이 인수이지 사실상 무자본으로 기업을 손에 넣는, 불법적인 기업사냥 방식을 썼다.

씨모텍과 제이콤을 인수한 뒤 이들은 곧바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이철수씨는 나무이쿼티라는 기업사냥 전문회사를 세운 이 대통령 조카사위 전종화씨를 등에 업고 씨모텍 전환사채를 발행해 삼화저축은행으로 하여금 두 차례에 걸쳐 각각 75억원과 60억원에 전환사채를 사도록 한 뒤 이 돈을 빼돌려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이에 대해 전종화씨 측근은 “이철수가 그렇게 질이 나쁜 사람인지 (전씨도) 미처 몰랐다고 한다. 이용만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뉴시스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6월2일 국회에서 삼화저축은행 인수 과정의 권력 실세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단물만 쏙 빼내가는 바람에 불과 1년 전 1억불 수출탑 수상에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씨모텍은 지난 3월 상장 폐지 위기에까지 처했다. 이철수씨 일당이 불법 횡령해간 자금은 각각 씨모텍과 제이콤의 공금 256억원과 282억원가량이다. 씨모텍 주주들은 그동안 이철수씨의 기업사냥 자금이 MB 조카사위와 금융감독 당국, 청와대 관계자 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들을 엄정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지난 3월 검찰에 제출했다.

이런 와중에 이철수씨는 대담하게도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 아예 헐값에 통째로 이 은행을 인수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삼화저축은행의 부실 누적 규모가 500억원대에 이르러 금감원에서 매각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낸 이철수씨는 MB 조카사위 전씨와 함께 인수한 또 다른 회사 제이콤을 통해 삼화저축은행 인수·합병(M&A)을 시도했던 것이다.

기업사냥꾼의 사금고로 전락한 저축은행

제이콤이 장부상 245억원을 보유한 것처럼 꾸미고 여기에 55억원을 보태 3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한 것이다. 금감원이 잔고 증명을 요구할 경우에 대비해서는 JJ인베스트라는 회사에서 전환사채(CB)를 발행해 350억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재무구조가 불투명한 코스닥 기업(제이콤)에 넘기는 대신 1월16일자로 삼화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킨 것이다.

최근 이철수씨의 정체를 검찰에 제보했다는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철수는 과거 군인공제회가 보유한 한국캐피탈을 인수하려다 잔금을 내지 못해 돈을 날린 적이 있음에도 2009년 신삼길씨가 소유하던 삼화저축은행의 지분 절반을 확보한 뒤 이후 삼화저축은행 자금을 제 주머니처럼 이용하다가 거덜을 낸 장본인이다. 삼화저축은행이 씨모텍에 BW(신주인수권부사채) 135억원을 투자한 이유도 이런 관계 때문이었다. 올 초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위기에 빠져 자기가 무자본으로 조달한 자금 상당액을 날릴 위기에 처하자 코스닥 상장업체 씨모텍과 제이콤을 통해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삼화저축은행을 완전 인수하려고 시도하다가 위험 부담을 느낀 금감원의 반대로 무산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철수씨는 보해저축은행에서도 수백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삼화와 보해 두 부실 저축은행이 몰락 직전에 기업사냥꾼의 사금고로까지 전락했던 셈이다. 이철수씨가 삼화저축은행의 대주주로서 사실상 권력형 로비스트였던 만큼 이씨를 붙잡아 그렇게 빼내간 돈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은 앞으로 검찰이 수사할 몫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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