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일,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 특수요원들에 의해 사살된 직후 리언 패네타 미국 중앙정보국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내용 중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빈라덴은 사망했지만 알카에다는 그렇지 않다. 테러주의자들은 분명히 복수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는 부분이다. 미국 정보 당국 총수가 빈라덴 사망 뒤 이례적으로 알카에다의 보복 공격을 경고한 이메일을 발송했다는 점은 미국이 그만큼 심각하게 테러에 노출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같은 기조는 5월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빈라덴의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세상은 더 안전해졌다”라고 공언한 것과 다른 분위기이다.

미국민 10명 중 6명 “보복 테러 우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를 접한 미국인들은 “드디어 정의의 심판이 내려졌다”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에 도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알카에다가 빈라덴의 사살에 맞서 대규모 보복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그들도 도취감에서 벗어나 테러 재발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빈라덴 사망 직후인 5월2일(월요일) 월가의 다우존스 지수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다.


ⓒAP Photo중무장한 경찰이 5월2일 보복 테러에 대비해 뉴욕 타임스퀘어의 모병소 앞을 순찰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보 당국은 알카에다의 제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와 다른 지도자들이 빈라덴 사망 이후에도 조직의 건재함을 드러내기 위해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올해 59세인 알자와히리는 이집트 출신 의사로 15세 때부터 이슬람운동에 가입해 활동해왔고, 알카에다의 최고 이론가로 알려졌다. 테러 전문가인 브루스 호프먼 교수(조지타운 대학)는 〈월스트리트 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알자와히리가 빈라덴만큼 돈과 카리스마는 없어도, 알카에다 조직의 전략과 발전·진화에 핵심 구실을 해왔다. 결코 우리가 경량급과 상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카에다 내의 이 같은 무게감 때문인지 패네타 중앙정보국장이 5월3일 일부 의원에게 빈라덴 제거 작전과 관련한 비밀 브리핑을 할 때도 알자와히리가 알카에다의 건재를 입증하기 위해 테러 계획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보복 테러에 대한 염려가 높아지면서 미국 정부도 만반의 경계 태세에 들어간 상태다. 주무 부처인 국토안보부는 과거 부시 행정부 때처럼 가장 낮은 녹색 경보에서 가장 높은 적색 경보에 이르는 색깔별 테러 경보 대신, 이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조처를 취했다.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은 “빈라덴의 사망으로 미국과 해외의 미국 기관에 대한 보복 공격이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정부 기관과 군 시설, 고위 정부 관리들이 보복 위협에 더 노출될 수 있다”라며 특별주의보를 발령했다.

ⓒAP Photo미국 정보 당국은 알카에다 최고 이론가 알자와히리(위)가 조직의 건재함을 드러내기 위해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국무부도 세계 각국의 주미 공관, 특히 미군 기지가 있는 나라들의 미국 대사관과 자국 여행객들에게 특별주의보를 내렸다. ‘9·11 테러’ 당시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를 본 뉴욕 시와 필라델피아 시, 수도 워싱턴의 경찰들도 24시간 특별 대테러 근무에 돌입했다. 뉴욕 시의 경우 경찰 헬기가 9·11 테러 참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공중 순찰 중이고, 중무장한 경찰들이 지하철역 주변을 철통같이 감시한다.

이처럼 보복 테러에 대한 경계심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라덴 제거 소식이 나온 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종전보다 11% 포인트나 오른 57%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미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빈라덴 제거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은 16%에 불과했다.

이런 민심을 반영하듯 의회 쪽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연방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의 조지프 리버먼 위원장은 〈ABC 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급진적 성향의 단독 테러범이 바로 이곳 미국에서 미국민을 상대로 테러극을 벌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진인 수전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도 “자생적 테러범이 빈라덴의 암살을 기점으로 보복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만일 알카에다가 미국을 상대로 제2의 테러에 나설 경우 예멘과 북아프리카에 근거지를 둔 핵심 조직이 주역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마크 줄리아노 연방수사국 대테러 담당 부국장이 지난 4월 민간 연구기관인 근동정책연구소에서 “예멘에 근거지를 둔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가 오늘날 미국에 가장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바로 이 조직이 2009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때 디트로이트행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폭파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또한 2010년 10월에는 미국을 출발해 예멘으로 향하려던 화물 항공기를 폭파하려다 적발된 적도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알카에다는 현재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 점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특히 빈라덴은 반미·반서방 감정을 미끼로 조직원들을 포섭해온 만큼 그의 사망을 계기로 젊은 이슬람 극렬주의자들이 알카에다에 들어가 반미 테러에 동원될 수도 있다고 미국 정보 당국은 판단한다. 특히 알카에다가 유럽 모처에 핵폭탄을 갖고 있다는 첩보를 미국 국방부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조직원으로부터 파악해두었다는 내용이 지난주 저명한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 leaks)를 통해 밝혀진 것도 미국 정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알카에다, 유럽에 핵폭탄 숨겼다는 첩보도

현재 미국 정부는 테러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빈라덴의 은신처에 관한 사전 파악 여부를 놓고, 논란의 핵심에 선 파키스탄에 대한 처리 문제가 그것이다. 빈라덴이 파키스탄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군사 요충지에 3층짜리 저택을 마련해놓고 지난 수년을 지냈는데도 이를 파키스탄 정보 당국이 몰랐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맞서 근래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온 파키스탄도 빈라덴에 대한 군사작전이 ‘승인받지 않은 미국의 일방적 행동’이라고 반발하는 등, 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다이앤 파인스타인 연방 상원의원을 비롯해 일부 중진 의원들은 파키스탄이 관련 의혹을 깨끗이 해명하지 못하면 연간 3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 및 군사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에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면서도 빈라덴 은신처와 관련해 현재 최소한 용의자 11명을 붙잡아 신문하고 있다. 대미 관계의 파국만은 피하려는 모양새다. 미국 또한 아프간 대테러전은 물론이고 향후 알카에다 조직의 근절을 위해서도 파키스탄과 지속적인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게 긴요하기 때문에 원조 중단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인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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