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북한의 나진항 사용권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 생각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라는 낙담과 함께  ‘판도라의 뚜껑이 열린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 대륙 침략을 위한 군항으로 개발한 나진항은 중국이 강성해진 오늘날에는 중국의 동해 진출을 위한 ‘군항’으로 역이용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북한은 그동안 중국의 두만강 출해권(즉 나진항 사용권)을 계속 차단해왔고, 때로는 미국, 때로는 러시아와 나진항 사용 협상을 벌여왔습니다. 그만큼 북한에게는 큰 카드였던 나진항 사용권이 중국에 넘어갔다는 것은 북한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방증일 뿐 아니라 한국·미국·일본의 대북 정책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지요.

앞으로 중국은 북한 북부 지방에서 채굴한 석탄 등 연료 자원을 나진항에서 동해를 거쳐 중국 상하이로 실어 나를 것입니다. 언제까지 석탄만 실어 나르지는 않겠지요. 다른 물자 역시 나진항에서 동해를 거쳐 활발하게 수송이 이뤄질 것이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항로의 안전보장 문제를 제기할 것입니다. 즉 자국 상선의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중국 군함이 동해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그런 풍경이 일상화되는 시기가 다가올 것입니다. 그와 함께 ‘(서해는 물론이고) 동해 역시 중국의 생명선’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겠지요.

중국 해군은 이미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 타이완을 잇는 선을 ‘제1열도선’이라 하여 중국 연안방위의 경계선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동해는 바로 이 제1열도선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동안은 이 제1열도선이 가상현실 수준이었다면 나진항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중국 군함이 동해에 모습을 나타내면 눈앞의 현실 문제로 다가오게 됩니다. 즉 동해를 무대로 중국·북한·러시아를 한 축으로 하고 미국·한국·일본을 또 한 축으로 하는 군사 각축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해와 동해를 무대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나선 배경이나 중국이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이를 비난하고 경계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전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판도라의 뚜껑이 열린 셈이지요. 역사와 지정학을 외면한 근시안 정책은 순간의 실수로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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