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위기 사태가 한창일 때 주변에서 이런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리스는 바로 우리 이웃이고, 아테네는 바로 우리 눈앞에 와 있다.” 그리스나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에게도 곧 닥칠지 모를 일이라는 뜻인데, 솔직히 그때만 해도 실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도 지나지 않아 이재명 성남시장이 토지주택공사와 국토해양부에 내야 할 5200억원에 대한 지급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중 재정 여건이 비교적 양호하다는 성남시가 폭탄의 안전핀을 뽑아 들면서, 그보다 사정이 나쁜 지자체 문제까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온 형국입니다. 이번호 〈시사IN〉에 기고한 홍헌호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리 지자체 중 일본 지자체 파산의 대명사로 유명한 유바리 시보다 재정 여건이 나쁜 지자체가 무려 47%에 이른다고 합니다.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치명적인 일본〉이라는 책을 읽고 제가 그동안 알았던 일본이 아니라 마치 낯선 괴물 같은 사회를 엿본 듯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알렉스 커라는 영국 작가가 쓴 이 책은 토건국가 일본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일들을 고발한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사람 한 명 다닐 것 같지 않은 첩첩산중의 도로에까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일일이 포장한다든지, 강이면 강마다 수없이 많은 댐을 건설하는 이유가 뭔지 추적해보니 건설회사와 건설족 의원과 건설관료들이 담합해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국가재정이 파탄 지경에 빠지는데도 그들의 탐욕은 끝날 줄을 몰랐고 이를 제어할 수도 없는 일본 사회의 맨얼굴을 접하며 저자는 경악합니다.

그 책을 읽고 일본 국민이 불쌍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일본과 같은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지자체 재정파탄의 대부분이 호화청사나 불요불급한 도로·교량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때문이란 점이 이번에 밝혀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중앙정부가 지자체들에게 경기 진작을 위해 필요하다며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SOC 사업을 벌이라고 독려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기야 중앙정부부터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사업에 몇 십조원을 물 쓰듯 하는 판국이니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어온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불요불급한 SOC 공사를 중단하느라 난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치명적인 것’은 한국뿐인 셈인가요?

기자명 남문희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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