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발표한 내용과 〈시사IN〉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3월26일 백령도 근처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보았다.

3월26일 낮 : 백령도 날씨는 맑아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다. 바다에는 바람이 불었지만, 초속 6.7m로 아주 거센 편은 아니었다. 이날은 한·미 합동 기동훈련인 2010 독수리훈련 4일째 되는 날이었다. 서해상에서 세종대왕함?최영하함? 윤영하함과 함께 미국 이지스함 두 척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편 국방부는 3월26일 천안함이 백령도에 간 것은 독수리훈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래픽

3월26일 저녁 : 초계함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에, 또 다른 초계함인 속초함은 대청도 아래에 있었다. 두 배는 모두 1200t급(포항급) 함선이다. 천안함에는 장교와 사병을 포함해 104명이 타고 있었다.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 1.8km 지점까지 다가왔다. 더 가까이 붙으면 까나리 어장과 만나게 되고 더 동쪽이나 북쪽으로 가면 북한군 포격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국방부는 천안함이 백령도 섬 가까이 접근한 이유에 대해 “북한의 새로운 공격 형태에 대응해 경비 작전 시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함선이 이렇게 섬 뒤에서 붙어 움직이면 북한군 육지 기지에서는 배를 탐지하기 어렵다.

밤 8시44분~9시16분 : 천안함은 북위 37도 55분, 동경 124도 38분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의 수심은 40~45m 정도 된다. 이 시각까지 천안함 내부에 특별한 비상상황은 없었다. 의무병 이은수 이병(22)은 지하 목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동기 전환수 이병은 옆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병사 대부분은 체육복 차림이었다. 육현진 하사는 반소매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누워 있었다. 정종욱 하사는 속옷차림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차균석 하사(21)는 8시44분께부터 여자 친구와 문자를 나누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장병에게 저녁 시간 휴대전화 통화는 중요한 낙이다. 여자 친구 김 아무개씨는 차 하사와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9시16분부터 답이 오지 않았다. 문자가 도중에 끊기는 것이 이상해서 김씨는 차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또 다른 실종자가 마찬가지로 가족과 통화하다 9시16분에 통화가 끊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종걸 의원이 한 유족과 만나 전한 내용에 따르면 아들이 통화를 하던 중 9시16분께에 “아버님, 지금 비상이니까 나중에 통화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차균석 하사 사례와 달리, 이 사례는 유족이 전화를 한 해당 실종자의 이름을 밝히지 말기를 바란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배 뒷부분에 있던 병사들이다. 차균석 하사는 사병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 친구 김씨는 차씨가 문자 메시지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3월26일 밤 침몰한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다시 수면 위로 보였다(위). 북한은 1월25일부터 3월29일까지 백령도 북쪽과 동쪽을 항해 금지구역으로 선포했다.

9시16분~9시21분(사건 발생) : 그것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시작했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몇 분 몇 초에 일어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함장실에 있던 최원일 함장(중령)은 몸이 공중으로 50cm 붕 뜨는 것을 느끼며 떨어졌다. 순간 전기가 나가고 어두컴컴해졌다. 정종욱 하사는 소란통에 침대에서 깨어나보니 눈앞에 배 뒷부분이 사라진 보습이 보였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많은 장병이 굉음을 들었고 바닥이 위로 솟구치는 현상을 경험했다.
국방부는 사건 발생 시각이 밤 9시20~22분이라고 밝혔는데 지진파 탐지 시각을 통해 얻은 간접적 추론이다.

9시21분59초 : 백령도 지진관측소 지진계가 지진파를 포착한 시각이다. 백령도 지진관측소는 천안함이 있던 곳으로부터 10km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관측된 지진파는 약 8초간 이어졌다. 리히터 규모 1.5로 TNT 폭탄 170~180kg이 폭발하는 에너지에 해당한다. 이 지진파 포착 사실은 기상청에 보고되지 않았다. 지진관측소를 관리하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측은 “진동 정도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진동은 사람이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학술적 가치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지진파 발견 소식은 사고 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추론을 일시에 뒤집어버렸다. 특히 천안함 자체가 피로 누적에 의해 자연 파괴(fatigue fracture)되었다는 의혹을 봉쇄했다. 혹시 천안함 뒷부분이 가라앉으며 해저면에 충돌해 생긴 충격이 지진파를 만든 건 아닐까.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공학과 교수는 “9·11 테러 때 빌딩이 무너지면서 생긴 지진파가 규모 2.1 정도였다. 반면 겨우 40m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것도 수중에서 생긴 낙하 충격이 규모 1.5 지진파를 만들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의 한 연구원은 “지진파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2곳 이상의 지진파 관측 자료가 필요한데, 현재 제대로 된 측정 자료는 백령도 관측소 하나밖에 없다. 규모 1.5라는 수치에는 다분히 오차가 있고, 그 오차 범위가 얼마나 큰지도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홍태경 교수는 “당시 지진파가 한국에 설치된 해외 연구소 관측기에도 잡혔다. 이 자료를 확보해 연구 중이다”라고 말했다. 피로 파괴설이나 암초 충돌설 등이 ‘기각’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9시23분경 : 백령도 해안은 해병 6여단 초병이 24시간 경계를 서고 있다. 국방부는  “사고 당시 해병대 TOD 운용병 2명은 천안함의 사고 순간 발생한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은 것으로 진술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같이 있던 장교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초소가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다”라고 다른 증언을 전했다. 아무튼 이들은 배 뒷부분이 쪼개지는 과정은 보지 못했고, 물기둥이나 화염도 목격하지 못했다. 굉음을 들은 초병은 열상감지장비(TOD)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국방부는 9시23분부터 녹화가 시작되었다고 밝히며 이전 촬영 자료는 없다고 했다. 9시23분에 찍힌 화면에는 이미 배 뒷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사고 발생에서 TOD 녹화에 걸린 시각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측정하기 힘들다.

9시22~26분 : 최원일 함장은 정신을 잃고 함장실에 갇혀 있었다. 동료 장교들이 망치로 함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그를 구출했다. 목욕실에서 샤워 중이던 이은수 이병은 벌거벗은 채 갑판 위로 올라왔다. 전환수 이병은 어둠속에서 비상 표지등을 보며 기어서 올라왔다. 배는 90도로 기울었고, 탈출 병사들은 높은 곳에 모여 구명조끼를 나눠 입었다.

생존한 장병 가운데 배 뒷부분이 사라지는 과정을 본 사람은 없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봤을 때는 이미 선미가 없어진 뒤였다는 것이다. 또 물기둥이 치솟았다거나 화염이나 연기를 보았다는 증언도 나오지 않고 있다. 지진파 발견이 피로 파괴설을 기각시킨다면, 생존자 증언은 기뢰 폭파설을 기각시키고 있다. 어쩌면 두 가설을 종합해야 할지도 모른다. 카이스트 해양시스템공학부 신영식 교수는 “기뢰가 배에 붙어서 터지지 않고 거리를 두고 터지더라도 충분히 선박을 파괴할 수 있다. 물기둥이 없이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천안함은 1989년에 건조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군함 수명이 40년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노후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2004년에 해군은 울산급 호위암 9척에 균열이 발생해 보강 공사를 한 적이 있다. 울산급 호위함은 당시 연령이 12년에서 24년 정도로 젊은 편이었지만, 해군은 “긴급한 작전 요소가  많아 높은 파도 속에서 무리하게 운영한 것이 원인이다”라고 수리 이유를 밝혔다.

배가 튼튼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부 충격을 받으면 가운데가 솟구치며 부러질 수 있다. 사고 원인을 두고 다양한 가설이 쏟아지고 있지만 천안함이 인양되기 전까지는 간접 추측밖에 할 수 없다.

9시28분 : 천안함 지휘부는 무선 장비가 작동되지 않는 바람에 상부에 보고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김광보 포술장(대위)이 휴대전화로 2함대사령부 상황반장 김동현 소령에게 사태를 알렸다. 이후 최원일 함장이 역시 휴대전화로 2함대 사령관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다.

9시33~41분 : 급보가 국방부 장관에게 까지 전달되었지만 정부는 사고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해군2함대사령부는 인천 해양경찰서에 구조 협조를 요청한다. 또 백령도에 있던 고속정 4척에 출동 명령을 내린다.

 

ⓒ자료:국방부

9시45분 : 백령도 연화2리 주민 김규복씨(75)는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KBS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젊은 시절 농구를 했던 그는 스포츠 뉴스에서 9시45분경 농구 소식을 전하는 것까지 보고 소변을 보러 집 밖으로 나왔다. 집 밖 화장실 앞에서 ‘쾅’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규복씨는 〈시사IN〉이 현장에서 만난 주민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소리를 들은 사람이다. 하지만 9시45분은 국방부 사고 추정 시각(9시20~22분)보다 한참 늦다. 김씨는 조명탄 소리와 혼동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조명탄은 그 이후 한참 뒤에 터졌다. 조명탄 소리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백령도에서 사고 현장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남해안의 중화동 마을과 장촌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 어민들은 밤 9시를 전후해 잠이 들었다. 중화동 교회에서 신도 150여 명이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굉음을 듣지 못했다. 밤 10시가 넘어 조명탄으로 바다가 환해진 뒤에야 주민들은 집 밖으로 나와 방파제가 있는 곳에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9시50분 :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어업지도선 두 척이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이미 천안함은 60%가량 침수되었다.

9시58분 :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헬리콥터도 왔다. 헤드라이트와 조명탄 등으로 사고 해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군 고속정은 천안함에 너무 가까이 가면  2차 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구조를 잠시 미뤘다. 그들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10시15분  : 해경 505경비함이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제 구조가 이뤄지기까지는 30분 이상 시간이 걸렸다. 
한편 해군과 국방부는 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 잠수정 혹은 반잠수정에 의한 공격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대청도 인근에 있던 속초함이 북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군이 북한을 의심한 정황은 이랬다. 4개월 전인 2009년 11월10일 인근에서 이른바 ‘대청 해전’이 있었다. 해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교전이었지만 북한 경비정 한 척이 반파됐다. 북한 측 희생자 수를 알 수 없지만, 피해 규모는 사상자가 나오기에 충분했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지면 우리 쪽 희생자만 부각되고 상대편 희생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1999년 1차 연평해전 때 병사 수십명을 잃었다. 2000년 2차 연평해전은 다분히 복수의 의미가 있었다. 교전 지점은 1차 연평해전과 비슷했다.이번 사고는 대청해전이 벌어진 곳과 가까이 있다. ‘복수의 패턴’을 고려하면 국방부가 북한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10시40분 :  속초함이 북상해서 현장 인근에 도착했다. 이 시각 속초함의 임무는 천안함 생존자 구조가 아니라 대북 경계였다.

10시43분 : 구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안함 높은 곳에 있던 탈출 승무원은 소방 호스를 타고 수면으로 내려와 구명 보트에 올랐다.

10시55분 :  속초함은 백령도 서쪽 해상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물체를 포착했다. 이 물체는 레이더상 그림에는 새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평상시였다면 사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전역 장병이 새떼에게 포격하는 일은 없다고 증언한다.
국방부는 당시가 비상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천안함이 원인 모르게 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부은 새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11시~11시5분 : 장관의 허가를 받아 속초함은 76밀리 주포로 5분간 130발을 발사한다. 물체는 아랑곳없이 북쪽으로 42노트 속력으로 진행했다. 국방부는 이 물체가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11시5분에 사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시각에는 뉴스에서 천안함 침몰 사실을 속보로 알리던 중이었다. 76밀리 함포 소리는 백령도 주민이 다 들었다. 북한과 교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이유였다.

11시811분 : 이동 물체가 11시8분쯤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11시9분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11시11분 북한 장산곶 땅 위에서 사라졌다. 국방부는 “레이더상에서 한 개에서 두 개로 분리됐다가 다시 합쳐지는 현상이 두 번 반복됐고, 광학추적장비(EOTS) 확인 결과 미확인 물체에서는 함정의 고속 항해 때 발생하는 물결이 식별되지 않았다”라며 새떼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11시10분 이후 : 최원일 함장이 천안함을 떠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구조는 끝났다. 11시20분께 천안함 앞부분이 물에 완전히 잠겨 육안에서 사라졌다. 경비정은 모두 56명을 구조했고 어업 지도선이 2명을 더 구조했다. 최종적으로 구조된 승무원은 58명이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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