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청와대의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은 현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체계적으로 구축됐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청와대 경호실은 청와대 경내 벙커를 유사시 적의 공습 및 침투뿐 아니라 테러 단체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방어시설로 개조하려 했다. 대통령과 주요 참모가 위기 시 이곳에 머무르며 국정 지휘를 위해 개조하고 첨단장비로 꾸려진 상황실을 들여놓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대로 예산을 확보할 수 없어 구상에 그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지하 벙커를 국가 위기관리 시설로 활용하려는 정책은 공군 준장 출신 류희인 위기관리비서관이 주도했다. 그는 국가안보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종합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했다. 기존 NSC를 확대 개편하면서 그 산하 주요 기관들의 주요 상황 정보를 종합하는 종합상황실을 설치한 것이다. 그 결과 2003년 봄 청와대 벙커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상황실을 만드는 공사를 마쳤다. 40여 평의 첨단 상황실에는 국내 23개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 전송되는 위기 및 재난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 상황판 (KNTDS 시스템)이 설치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2005년 4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재난 대책을 보고받는 노무현 대통령

육해공군 사령부와 경찰청, 산림청, 소방본부, 한전 원자력 상황실 등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청와대 상황실로 연결된다. 공중 상황을 클릭하면 한반도 주변 360km 반경 내에서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와 함정 정보가 청와대 상황실에 뜬다. 원전의 가동 현황과 경찰이 전국에 설치한 CCTV 이상의 중요 사건, 지진파 상황, 산불 발생 현황도 실시간 잡힌다. 위성 정보도 받는다. 현장 부처의 단계별 보고를 거쳐 왜곡되거나 시간이 흐른 정보 대신 실시간 긴급 현장 상황을 보고받음으로써 위기 신속 대응력을 높인 것이다.

종합상황실도 폐지하려다 되살려

하지만 이런 위기관리 상황실과 시스템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때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잃어버린 10년 청산’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비상설 기구로 바꾸고 사무처를 폐지해버렸다. 또 그 산하 종합상황실마저 덩달아 해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때마침  남대문 화재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 위기관리의 허점이 비판받자 급히 상황실을 되살렸다.

결국 위기관리 상황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규모는 축소됐고, 상황실장은 1급 비서관에서 2급 행정관으로 격하된 뒤 인원도 24명에서 15명으로 줄었다. 그러다가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피살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실 직급은 다시 비서관급으로 격상했지만 기존 통합관리 체계는 없어졌다.

즉, 외교안보와 재난관리를 분리해 외교안보 분야 위기는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담당하고, 재난관리 분야는 행정안전부로 하여금 가져가게 한 것이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고처럼 당초 외교안보상 위기(북한의 도발)로 인식됐다가 ‘원인미상’의 인명사고로 파악되는 단계라면 당연히 재난관리 분야가 동참해 인명구조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였어야 맞다. 하지만 재난인지 외교안보상 위기인지 각각 분리돼 있고, 대통령은 재난위기 회의는 주재하지 않고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꼴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주일여가 흐른 4월2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건의를 받고서야 “청와대 외교안보 위기관리팀을 대폭 보강하겠다”라고 답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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