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한복판에 위치한 유바리(夕張) 시는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탄광촌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주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되어감에 따라 마지막 남은 ‘미쓰비시 유바리 탄광’도 1990년 폐쇄됐다. 탄광이 한창 번창할 때 10만명을 넘던 마을 인구도 1만1000명으로 줄었다. 

유바리 시는 폐허로 변해가는 탄광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테마 공원과 스키장을 건설했다. 문화 도시로 변신하기 위해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만들었다. 유바리 영화제에는 한국 영화계도 매년 참가하는 국제적 행사로 한때 각광받았다. 유바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유바리 참외’는 일본 전국에서 큰 호평을 얻었다.

이런 유바리 시가 2007년 3월, ‘재정재건 단체’로 지정된 것은 매우 충격이었다. 시가 사실상 도산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 규모의 재정이 파탄한 것은 1977년 미에(三重) 현 우에노(上野) 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바리 시의 총부채액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292억 엔과 지방채 미상환액 187억 엔, 그리고 기업에 대한 채무 120억 엔 등 약 600억 엔이다. 이는 유바리 시의 연간 수입 44억 엔의 13.6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연합뉴스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는 일본의 지방 도시 유바리의 시민회관 모습.
홋카이도 도청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유바리 시의 참상을 보다 못해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적자액 360억 엔을 연리 0.5% 저리로 융자해주고, 시장 금리와의 차액은 홋카이도가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중앙정부도 지방 교부금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 유바리 시도 자구책을 발표했다. 시장의 월급을 75%, 부시장의 월급을 70%, 일반 직원의 월급을 15%씩 삭감하고, 부장과 차장 등 간부 직원은 전원 사표를 쓰게 했다. 시의회 의원 수도 18명에서 9명으로 줄이고, 보수도 절반으로 낮췄다.     

시민 부담도 대폭 늘어났다. 예컨대 지방에서 부과하는 재산세율이 1.4%에서 1.45%로 오르고, 경자동차 세금도 두 배로 뛰었다. 쓰레기 처리는 원칙적으로 유료화했다. 하수도 사용료도 1000엔가량 인상됐다. 버스 요금도 50% 올랐다. 심지어 보육원의 요금도 단계적으로 인상됐다.

‘오사카 부’의 행정개혁과 고난

이렇게 해도 유바리 시는 정확히 18년이 지나야 ‘재정재건 단체’라는 악몽에서 헤어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연간 채무 상환액이 현재 11억 엔에서 10년 뒤엔 29억 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바리 시의 재건에 걸리는 시간은 18년이 아니라 그 두 배가 소요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유바리 시처럼 재정이 파탄 직전에 놓인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는 40여 곳으로 추정된다. 나가노(長野) 현의 오타키(王瀧) 촌은 재정건전성이 유바리 시보다 훨씬 열악하다. 특히 간사이(關西) 지방의 중심 도시 오사카 부는 도쿄 도(17조 엔), 홋카이도(5조2000억 엔)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부채(4조3000억 엔)를 안고 있어 오사카 부의 재건 문제가 지금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사카 부의 재건 문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은 2년 전 39세의 나이로 수장에 오른 하시모토 도루(橋本徹) 지사이다. 그는 2년 전 2월6일 청사로 처음 출근하면서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즉, 신규 채권 발행을 일절 인정하지 않고, 전체 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1000억 엔 삭감한다고 선언했다.
또 직원 급여를 10% 삭감하고, 자신의 퇴직금(4176만 엔)도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불필요한 문화시설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각종 단체에 대한 원조도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사립학교 운영비 지원금(연간 600억 엔)도 대폭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하시모토 지사는 또 오사카 부 청사를 최신식 건물인 ‘월드 트레이딩 센터 빌딩’으로 이전하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낡은 청사를 수리하게 되면 145억 엔이 별도로 들어간다는 이유에서이다. 경비 절감과 업무 효율화를 위해 오사카 시의 관련 회사가 소유하는 55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으로 청사를 옮기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얘기였다.

하시모토 지사는 또 간사이 국제공항을 활성화하기 위해 밀접한 이다미 공항·고베 공항 등 세 공항을 통폐합하자고 제안했다. 즉, 국내선 전용인 이다미 공항과 고베 공항을 폐쇄해 간사이 국제공항을 오사카 지방의 거점 공항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하시모토 지사의 개혁안은 의회, 공무원 사회, 노동조합,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예컨대 직원 인건비와 경찰관 정원을 대폭 줄이고 사립학교 조성금 등 각종 보조금을 삭감하는 식으로 1100억 엔의 재정적자를 감축한다는 이른바 ‘오사카 유신 프로그램’은 의회와 직원 노동조합의 반발로 예산을 18억 엔 삭감하는 데 그쳤다.

또 오사카 부 청사를 이전하는 문제는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간사이 지방의 세 공항을 통폐합하는 문제도 이다미 시·고베 시·효고 현 등의 반발로 한 치의 진전이 없다. 

그럼에도 하시모토 지사의 지지율은 현재 80%대를 유지한다. 반면 취임 직후 똑같이 80%대를 기록했던 하토야마 총리의 지지율은 현재 30%대로 급락했다. 하시모토 지사가 변호사에다 탤런트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취임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그가 80%대의 지지율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다. 이는 오사카 지역 주민들이 의회 및 직원 노동조합과는 반대로  하시모토 지사의 개혁 마인드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고 있는 공적 채무 잔고는 올해 말에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달하는 949조 엔이 될 전망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급하지 않은 도로 건설과 댐 건설을 중지하고, 애니메이션 전당과 같은 불필요한 문화시설도 건설을 중단했다. 자민당 정권 때 만들어진 공공사업 중심의 ‘토건국가 체질’에서 하루빨리 탈피하겠다는 얘기이다.

ⓒ뉴시스지난해 7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지사(왼쪽) 관광교류 촉진 협정을 맺었다.
중앙정부·지자체 채무액 949조 엔

일본 정부는 또 지방자치단체가 파산, 즉 재정 파탄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3년 전 ‘지방 공공단체의 재정 건전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따르면 실질 적자 비율이 3.75% 이상, 실질 공채 비율이 25% 이상, 장래 부담 비율이 400%에 달하는 광역 지방자치단체(都道府縣)는 ‘재정 건전화 단체’로 지정해 재정재건 계획을 제출케 하고 외부 감사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특히 실질 적자 비율이 5%를 초과한 광역자치단체는 기업의 도산에 해당하는 ‘재정재생 단체’로 지정해 감시와 감독 체계를 강화한다. 물론 시(市)와 정(町), 촌(村)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에는 광역자치단체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재정 건전화 단체인지, 재생 단체인지를 결정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정 건전화 단체’로 지정되기 직전 상태인 일본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40곳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연간 세입을 뛰어넘는 규모의 적자 국채를 발행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앞으로 10년을 버틸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연쇄 파탄이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이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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