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 명진스님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중에서〉

그 자리에 동석했던 김영국 거사라는 분이 11월 20일 쯤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좀 조심을 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안상수 원내대표하고 자승원장하고 고흥길, 그때는 고흥길 문광위원장이 있었다는 얘기는 제가 못 들었습니다.

하여튼 앉아서 얘기하는데 앉자마자 강남의 부자 절에 좌파주지를 그렇게 놔두면 되겠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스님,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그 정도로 얘기할 것 같으면 다른 곳에서도 많은 압력을 받을 것인데 스님이 말씀을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집권당에 대해서 아니면 지금 권력에 대해서 비판하는 걸 좀 삼가해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미로 저한테 와서 충고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 알았다, 내가 너무 날선 비판을 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가보다 하고 무심하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30일 날 자승원장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해서 약속을 했습니다.

명진 스님
그래서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가 권력으로부터 좀 압박을 받는 건가요? 내가 그러니까 뭐 안상수 원내대표가 좌파주지 운운했다 소리를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아니, 그 사람은 좌파좌파 하는데 내가 왜 좌파인가 모르겠다, 징집영장이 나오면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피해가지고 결국은 고령으로 군대를 안 갔거든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아버지도 육군병장으로 제대하셨고 저도 육군병장으로 제대했고 군 복무 중에는 제가 맹호부대로 월남까지 갔다 왔는데, 그리고 내 동생은 스무 살에 해군에 자원입대해서 훈련 받던 중에 순직을 해서 지금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렇게 묻혀 있는데 내가 왜 좌파냐, 그 사람 컵에 든 물이라도 끼얹어주지, 그런 말을 원장이 듣고 앉아 있나 이러면서 웃었습니다.

자승 총무원장이 제가 왜 이렇게 결정했느냐 물어보니까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게 누가 한 거냐’ 그래서 내가 ‘귀신이 씐 거요?’ 내가 그러니까 ‘아마 그때 귀신이 씌었나 봅니다’ 이 정도로 얘기할 정도면 이건 외부의 압력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3월21일 명진스님 봉은사 일요법회 법문 전문(출처: 〈불교포커스〉)

먼저 법상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야 하는데 오늘은 부처님의 법이 아닌 세간의 시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신도님들과 사부대중에게 저의 부덕한 소치로 그동안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를 드린다. 봉은사 부처님께도 참회를 올린다.

지난 일주일이 굉장히 길었다. 1년이 지나간 것 같은 세월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가 결국은 솔직해지자, 솔직하게 모든 일을 신도님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해인사로 출가, 성철스님 문하에서 1년을 있다가 군대를 가게 됐다. 군대 다녀와서 다시 법주사로 출가했다. 걸망을 지고 이 선방 저 선방으로 돌아다니 86년도에 해인사 승려대회를 계기로 사회와 종단의 여러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인연이 남다르게 깊어졌다.

그러다 제가 종회 그만두고 다시 선방을 가게 됐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94년 종단개혁 때는 제가  봉암사 선방에 있다가 올라와 참여했다. 94년 종단개혁 때 제가 부처님께 가사를 바치며 이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산문을 떠나겠다고 했다. 중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종단의 개혁이 성공했다. 형식적으로는. 지금의 종헌종법도 개혁회의에서 다 마련된 것이다. 그 뒤로도 종회 활동을 하다가 선방에서 남은 공부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시 봉은사 주지를 맡게 됐다.

봉은사 신도들이 봉은사에 내걸린 직영사찰 전환과 관련한 게시판에 붙은 기사를 읽고 있다
봉은사 주지에 대해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제의 받았을 때 “제가 선거 때 반대편에 서 있었는데 맞지 않다”며 거절을 세 번 했다. 그런데도 지관 스님은 “명진 수좌가 아니면 봉은사에 들어가기 쉽지 않아. 좀 들어줘”해서 제가 지관스님께 “스님, 전례 같이 큰절 주지가 관례적으로 원장스님에게 드리는 돈은 못 드린다. 대신 정말 주지 잘 보냈구나 말씀 듣도록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94년 이루고자 했던 개혁을 봉은사에서 한번 해보자. 큰 틀에서의 종단개혁이 법안을 바꾸고 종헌종법을 바꾸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부처님의 법대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절을 만든다면 종단에 파급이 되어 종단이 맑고 신심 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겠나하는 원력을 세우고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기도 시작할 때 여기 신도님들이 믿지 않았다. 100일 지나도 믿지 않았고, 200일 지나도 믿지 않았다. 300일째 되니까 정말 기도 하는 건가 생각했다. 500일째 되는 날 이 법상에서 내려와 신도님들에게 3배 올렸다.

만약에 제가 혼자 기도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다. 여러 신도님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여러 신도님들이 기대하는 그 마음을 생각했다. 때에 따라 늦잠을 자고 싶기도 하고 빠지고 싶기도 한데 신도들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신도님들이 저에게는 부처님이요 호법신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마음으로 절을 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똑같다. 중노릇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거구나 느꼈다. 봉은사에서의 3년간의 중노릇을 신도님들에게 회향하고 싶다.

봉은사가 재정을 공개할 때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저는 재정의 투명성 분명히 하면 신도들의 신뢰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봉은사가 바뀌면 ‘우리도 열심히 하자’며 전국 사찰에 영향이 미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저렇게 잘 되니까 우리가 직영해야 겠다’고 들어올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총무원장 자승 원장은 저하고는 남다른 사이다. 92년 봉암사에서 한철 살고 왔을 때 자승 원장은 “앞으로 조계종은 (명진)스님이 책임져야 한다. 제가 스님을 원장을 만들겠다. 지금부터 준비하세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사판에 관심이 없다. 스님이나 하세요”하고 웃고 말았다. 그 뒤로 여러 인연관계로 때에 따라 반대 입장에도 서고 같은 입장에도 서고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러다가 지난 총무원장선거 때 자승 원장이 저를 찾아와 “스님, 제가 총무원장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더라. 전에는 날 보고 총무원장하라고 하더니 본인이 나간거야 하니까 ‘스님은 종정하셔야죠’ 하더라. 그래서 종정 되는 꿈만 꾸고 있다가. (대중 웃음. 박수) 그러면서 내가 이러이러한 반대 뜻을 가진 스님들 합의해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부주지 진화스님이 자승스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했다. 저도 진화스님보고 이왕 돕는 거 후회 없이 하라고 말했다. 진화스님과 저도 아는 인연 모르는 인연 다 해서 도왔다. 종도들의 기대와 희망 속에, 거의 추대 되다시피 해서 33대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당선 후 취임식에서 소통과 화합이라는 슬로건으로 종단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젊은 원장이지만 우리 종단이 화합 분위기에서 출범했으니 희망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본인(총무원장)이 또 선거 와중에 말하기를 ‘스님이 저를 반대한다 하더라도 봉은사같이 훌륭하게 신심으로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신도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하면 저를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봉은사 주지를 오래도록 하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그 말이 고마웠다. 봉은사를 중심으로 한국불교 중흥을 해보자, 바꾸자고 까지 약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제를 올리는 명진 스님
선거 와중에 본인이 은정장학재단 건물에 주처를 정하다보니 봉은사에서 거주하겠다고 요청했다. 지체 없이 제가 쓰는 방 앞을 내주었다. 중앙종회의장까지 지낸 거물급 스님이 앞방에 있는 것 부담되지만 내주었다. 그 방에서 선거운동했고, 사람들 만났고, 총무원장이 됐다.

봉은사 직영문제를 누구하고 소통 했나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어떤 사람으로 소통해 직영을 결정했다. 저에게 사전에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무회의에서 첫 번째 봉은사 직영문제를 결정하던 날 아침에 총무부장 영담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쁜 소식 전하려고 전화했습니다. 봉은사는 이제 직영사찰로 바뀌었습니다. 하하하” 했다. 나는 그때 직영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알아서들 해”하고 말았다. 그 다음에 부주지 진화스님이 쫓아와서 “봉은사 직영하겠다고 합니다” 했다. 근데 나는 직영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까지도 감을 못 잡았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날 오후 3시에 민족공동체추진본부를 법인으로 만드는 회의가 있었다. 당연직 이사장이 총무원장이고 제가 대표이사를 맡는 회의였다. 일찍 들어갔더니 원장 방에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이 있었다. 제가 들어가서 직영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얘기 하다가 “직영 어떻게 된거요. 스님 뜻이 실린거냐”고 하니까 “내 뜻이 실리지 않고 어떻게 했겠는가”라고 말했다. “당해사찰 주지에 한마디 없이 직영한다는 게 뭐냐. 날보고 나가라는 소리네. 사표를 내라고 하는게 낫지 않을까”하고 화를 내고 나왔다. 그래도 회의는 했다.

이런 과정 거치면서 왜 직영을 하려고 할까, 참 궁금하기도 하고 사전 설명도 없고 이해가 안갔다. 아무도 직영문제를 어떤 부장도 내가 거론했다는 사람이 없고 답답했다. 그러던 차에 진화스님이 종회의원 설득해 종회에 안건 못 올라오도록 총무분과위원회에서 논란 끝에 4대5로 부결시켰다.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직영지정 얘기가 계속됐다. 3월 9일 4시쯤 자승 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총무원장이 커피숍에서 기다린다기에 내가 전화하고 찾아가겠다고 했다. 은정장학재단으로 갔더니 “죄송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일을 왜 하는거요? 누구 작품이요? 영담스님 작품이요, 원담스님 작품이요?” 하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참회합니다” 했다. 기가 막혔다. “어디서 압력 받은 거 아니요? 강남 한복판에서 이명박 정권 비판적인 목소리 낸다고 나를 정리하라는 것 아니요” 하니까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했다. 그런 직영 지정은 귀신이 씌어서 했나. 그랬더니 원장이 “귀신이 씌었나 봅니다”했다. 그럼 직영귀신은 어디 있나?

그럼 도대체 이 일이 왜 생긴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11월 5일 총무원장 취임식 있었다. 11월 20일경 김모 거사가 나를 찾아왔다. “스님 며칠 전에 자승 원장하고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안상수 의원하고 같이 자리를 했다. 11월 13일 오전 7시30분 서울 프라자호텔이었다. 그 자리에서 스님 얘기가 나왔다. 안상수 의원이 앉자마자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잣절 주지를 그냥 놔둘 수 있냐’고 했다. 그 자리에 국회문광위 고흥길 위원장도 같이 있었던 걸로 들었다. 자승 원장이 대답하기를 ‘거기는 임기가 보장 되어 있어 어떻게 할 수 없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용산참사에 1억 전달한 것을 두고 얘기한 걸로 나는 이해했는데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 막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자승 원장이 ‘봉은사는 재정이 공개돼 있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것을 3년 동안 모은 것인데 그걸 원장이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저는 봉은사 직영 문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 김모 거사는 ‘스님 앞으로 비판을 하더라도 좀 맞춰서 하셔야 합니다’하고 말해주러 온 것이다. 김 거사는 자승 원장과 같이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던 사람이다. 그 얘기를 듣고 싱거운 사람들 하고는 무심하게 흘렸다. 총무원장이나 되는 사람이 집권여당 원내대표 만나 할 말이 그리 없었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봉은사를 직영하겠다고 하면 누구와 소통해야 하나. 신도들하고 해야 한다. 봉은사 사부대중과 해야 한다. 그런데 안상수 의원과 소통한 게 되죠? 그게 소통인가? 밀통이다. 그게 화합인가? 이 종단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 화합인가? 이것은 야합이다. 밀통과 야합을 통해 종단에 분란을, 봉은사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자승 원장이 해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제가 하는 말이 근거 없는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왜냐면 정권으로부터 압력 받은 사람이 말을 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진실은 이긴다고 판단하면서 이 말씀을 드린 것이다.

안상수 의원에게 이 자리 빌어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나라가 세종시로, 4대강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데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국회의원이 남의 종단 수장을 불러내 주지를 바꿔라 마라. 시정잡배도 이런 짓 안한다. 만약에 제 말이 근거 없는 허황된 말로 판명된다면 내 발로 봉은사 걸어 나갈 것이다. 내 손으로 총무원에 가서 승적부에서 제 이름 지워버리겠다.

안상수 의원이 만약에 자승 총무원장과 시장잡배만도 못한 밀통을 했다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고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11월 30일에 자승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선되고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제가 원장 축하를 해야 하는데, 과거같이 축하금을 줄 수는 없다. 대신 분담금을 1억씩 더 내겠다고 했다. 저는 종무기관에 예산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많아야 포교와 교육과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별로 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내가 1억 더 내겠다고 한 것이다. 납세자가 국세청에 가서 세금을 더 내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의 재임이 걸려 있으니 이 원장에게 뒷돈 주느니 차라리 분담금을 더 내겠다고 한 것이다. 앞으로 저는 봉은사 재정 좋아지면 종단 발전 위해서 분담금 더 내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10.27법난 보상금을 조계종이 1000억원 정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그 얘기를 하며 봉은사에 좀 써 달라고 했다. 그러자 원장은 ‘그 돈은 조계사 성역화에 쓰는 것이 1안이고 2안으로 봉은사 주차장 부지에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었다. 그 후 내가 원장 된 후 청와대로부터 나에 대해 압박이 안 들어오나 물었다. 그러자 자승 원장의 말이 좌파 주지가 돈 많은 절에 앉아 있다는 그 얘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원장이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었던 거냐. (안상수) 그 녀석 먹던 물컵이라도 끼얹지 그랬냐고 말했다.

얼마 전 안상수 의원이 ‘대한민국에 성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좌파 교육 때문이라고 그랬다는 것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길태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교육 받았다. 좌파가 뭔가. 뭔가 좀 맘에 안들고 맘에 안 들면 좌파인가. 좌우의 개념이 무언가? 박정희는 평양에 이후락을 보내 7.4공동성명을 냈다. 남과 북이 화합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고자는 대의를 갖고 합의한 것이다. 박정희가 좌파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박근혜도 좌파냐?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평양을 방문했다. 좌파인가? 정주영 회장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고 있다. 현정은도 좌파인가?

이제 이 지긋지긋한 좌파 논쟁은 그만 두어야 한다.

저도 종교인의 입장에서 남북이 전쟁 없이 평화통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북지원도 하고 북쪽에 가기도 했다. 혹시 북한이 오판해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뜻이다. 물론 북쪽이 문제가 많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살살 달래야 하지 않나. 성질 나쁜 동생 못된 짓 못하게 말리면서 공존하고 민족적 비극은 막아야 되지 않으냐. 북쪽이 경우 안 맞고 생트집 잡는 일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 절단을 내고 굶겨 죽여야 하나? 그건 아니다. 이런 것이 좌파인가?

안상수는 아무데나 좌파 갔다 붙이면 되는 줄 안다. 아마도 자기 부인이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이라고 했을 것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좌파 자식이라고 할 것이다. 지나가다가 개가 짖어도 좌파 개라고 할 것이다. 이 민족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안상수 대표는 정치 손 떼고 뒤로 물러나기를 권한다.

엄청난 반발 무릅쓰고 직영한 원인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의 부탁 아니면 협박 아니면 지령을 받은 자승 원장이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직영을 하겠다면 왜 하겠다는 것인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사전에도 준비가 없었고, 사후에도 준비가 없다. 총무원은 지금 법정스님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말없이 대응할 것이라고 한다.

3월 12일 종회에서 봉은사 직영으로 결정할 때 안건이 저 밑에 있었다. 법정스님 입적 소식 듣고 위에 있는 안건 다 없애고 직영건을 올려 목탁을 두들겼다. 정말 법정 스님 열반을 추모하는 분위기였다면 왜 이 물의를 무릅쓰고 다른 안건 없애면서 왜 봉은사 직영만 목탁을 쳤는지 나는 묻고 싶다.

봉은사 신도들
저는 봉은사가 정말 여법한 도량으로, 신심 나는 도량으로 바꾸고 싶다. 그것이 법정스님을 추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제가 이런 말을 법상에서 하는 것이 죄송스럽다. 그런데 그런 틈을 이용해 봉은사 직영지정하겠다는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종회의원들에게 묻겠다. 의장과 의원 누구하나 만나면 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난 금요일에 종회의장이 찾아왔다. “이제는 잘 얘기해서 시끄럽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 원장하고 잘 상의해서 직영되더라도 주지 계속 하고”했다. 나는 봉은사 주지에 눈이 멀고 환장한 사람 아니다. 여러 신도들이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걸망 지고 나가겠다.

그러나 어떠한 외부의 압력이나 압박이 온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집단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신도들에게 ‘이럴 때 왜 가만있느냐며’ 비난을 받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봉은사에서 물리적인 사태가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제가 얼마나 원력을 세우고 봉은사 법당에서 절을 했는지 아시지 않겠느냐. 나 하나 잘 되자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 시린 발을 만지며 한국불교를 바꾸겠다는 원력으로 절을 했다.

직영을 지정할 때 도선사가 같이 올라갔다. 도선사는 빠졌다. 왜 빠졌나. 봉은사를 직영으로 하겠다는 설명도 없이 강남북을 포교벨트 이어서 종단 발전하겠다는 게 기획실장 원담스님의 공식 설명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는다. 종회도 어떤 설명도 없이 대안도 없이 직영하겠다는 총무원의 계획을 받아들인 것이다.

만약에 봉은사를 합리적인 방법과 신도들과의 소통 합의하고 원만한 방법을 갖고 직영한다면 모르지만, 이유 없이 정당한 명분 없이 봉은사를 직영을 끝까지 한다면 그것 역시 제 발로 총무원에 가서 제 법명 석자 적힌 것을 승적부에서 지우겠다. 저의 40년 중노릇 걸고 난 이 일을 단호하게 막겠다.

혹자는 저에게 봉은사 주지자리 지키려고 한다고 한다. 제가 지난 법회 때 만약 폭력적인 방법으로 봉은사를 들어오면 목숨 걸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다 빼고 ‘봉은사 주지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겠다고 했다’고 인터넷 언론은 도배를 했다.

부처님의 길을 걷는데 꼭 승복을 입고 머리 깎아야 한는 것 아니다. 마음 비웠는데 승적부에 내 이름이 있고 없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기느냐. 봉은사 주지 있고 없고를 생각할거라고 보느냐. 저는 만약 조계종 총무원과 종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사리가 합당하고 논리가 있고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안이 있다면 수용하겠다. 그러나 신도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부대중의 뜻과 상관없이 직영을 끝까지 하겠다고 하면 저는 승려를 포기하겠다. 종단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불교 바뀌어야 한다.

저는 이러한 정치세력과의 야합 속에서 이뤄진 직영문제는 확실하게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너무 정치적인 발언 많이 한다고 한다.

정치세력과의 야합 속에서 봉은사 직영 문제는 확실히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에 대해서 정치적이라고 하고 신도들도 이런 생각하는 분들 많은 줄 안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행위를 통해서 내가 이익을 보면 정치적일 수 있다. 거대한 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있어야 한다. 저한테 무슨 이익 있겠나. 원장한테 용돈 갖다 주고 정권에 굽신굽신하고. 한국불교가 그렇게 살아왔다. 청와대서 부르면 무릎이 깨져라 달려가 밥한 끼 먹고.

노무현 정권 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제의를 받았다. 한마디로 거절했다. 왜냐. 저는 부처님 제자니까. 정치적이었다면 받았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정치권에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가난한 국회의원한테 밥은 몇 번 산 적 있다. 내가 왜 정치적이냐. 안상수나 시정잡배와 같은 머릿속에 좌파라는 낱말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국회의원이다. 이런 사람하고  만나서 호텔 방에서 밀통과 야합을 하는 사람이 정치승이지, 내가 왜 정치승이냐.

서산대사가 쓴 선가귀감의 구절을 법정스님이 인용한 것에 박쥐승, 머리 깎은 거사, 가사입은 도둑이 있는데 앞으로는 밀통승, 야합중이라는 꾸지람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국사회가 도덕적인가. 서로 믿고 신뢰하는 풍토가 형성된 사회인가. 경제만 좋아지고 먹고사는 것만 좋아지면 좋은 세상인가. 불교적 관점에서 부처님 말씀에 근거해서 판단할 때가 되었다.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됐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약속과 신의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사람, 남의 논문 남의 글 표절해 쓰고 대법원 판결이 나도 끄떡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우린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최소한의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창피한 줄 모르고 그저 돈만 챙기려 한다.

집권 여당의 대표와 자승 원장이 얼마나 가까운지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고 오늘 법회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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