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격 지정하자 봉은사 명진 주지스님은 한나라당 안상수 사무총장을 지목해 권력 외압설을  제기했다.
〈시사IN〉은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직전에 과연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그 숨가빴던 과정을 추적했다. 봉은사 사태 진실은 무엇일까?  


글 싣는 순서
1)봉은사는 어떻게 총무원에 접수됐나
2)봉은사에 검은 손이 뻗친 까닭은?
3)이명박 정부와 명진


지난해 11월 제33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자승 스님(왼쪽)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모습.

이번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 또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 과정을 두고 불교계 안팎에 정권의 외압 의혹이 급속히 번졌고, 급기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외압의 몸통으로 거명됐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조계종 내 대규모 사찰들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재정을 의존하는 주요 사찰은  크게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로 나뉜다. 그 중 직영사찰은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아 인사·재정·포교를 직접 관장하며 파견 주지는 재산관리인 구실만 하는 곳이다. 직영사찰은 거액 시주금이 들어오는 전국의 큰 사찰에서 주지가 시주금을 사금고화하는 등 사용처를 놓고 큰 말썽이 빚어지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총무원장이 직접 나서면서 도입한 제도다. 현재 직영사찰은 조계사와 대구 팔공산 선본사(갓바위), 강화도 보문사 3곳이다.

이에 비해 특별분담금 사찰은 지역 교구 본사 소속으로 총무원과 독립해 운영되면서도 종단의 재정안정을 위해 총무원에 특별분담금을 내는 사찰을 말한다. 주지의 임기와 권한, 자율적 포교활동이 보장되는 곳으로 전국에 걸쳐 도선사·봉은사·연주암·석굴암·낙산사·봉정암·내장사·보리암  8곳이 있다. 

그러면 일견 총무원의 절 운영 방식을 둘러싼 행정적인 처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이 이토록 말썽을 빚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봉은사는 직영사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라는 조계종 내 대다수 여론을 총무원이 묵살한 채 아무런 소통 없이 급하고 무리하게 직영사찰 지정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사전에 해당 사찰의 의견 수렴도 없었고, 직영으로 지정하는 이유도 속시원히 내놓지 못했다. 직영사찰 지정 요건이 되려면 사찰 운영 과정에 횡령 등과 같은 현저한 비리가 있었거나, 분규 따위로 사찰 내부 재정이 마비되는 등 큰 말썽을 빚어 종단 차원에서 직접 개입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봉은사는 지난 3년 동안 재정·인사·포교 등을 통틀어 조계종단 내에서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찰로 꼽혔고, 총무원에 특별분담금도 그만큼 많이 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주지를 맡은 때는 2006년. 그때까지 강남구 삼성동 요지에 있던 봉은사는 불교 내에서 부끄러운 역사의 상징이었다. 과거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폭력사태로 얼룩진 어두운 이미지의 봉은사에 주지로 취임한 명진 스님은 ‘수행 중심의 사찰을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는 봉은사 중창 불사를 위해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매일 1000배를 했다. 그는 사찰 재정을 모두 공개하고, 운영의 모든 결정을 신도회와 함께했다. 가령 전체 1년 예산과 사업계획, 사업 내용까지 신도들과 함께 결정하는 투명한 절을 만든 것이다. 돈이나 절 중심이 아니라 신도 중심, 활동 중심의 사찰을 내걸고 수행에 들어간 명진 스님의 기치는 서서히 부유촌인 강남 바닥에서 먹혀들어갔다. 첫해에 3200명의 새 신도가 들어왔고,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3년 만에 1만여 명을 넘어섰다.

또 그 전까지 한 해 80억원대이던 절 재정은 130억원대로 급증했다. 강화도 보문사가 20억원대 재정 사찰이라는 점에서 명진 스님 체제의 봉은사에서는 단시간에 보문사 규모의 사찰이 두 개 이상 늘어난 효과를 본 것이다. 물론 총무원 측에서도 명진 주지스님이 봉은사를 사실상 중흥시켰다는 점을 인정한다. 오히려 그래서 재정이 매우 우량해 종단 사업목적을 위한 재원으로 충당하기가 알맞아 직영사찰로 지정하게 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쫓기듯 전격 단행한 직영사찰 지정이 과연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랬다면 등록된 20만 봉은사 신도는 물론이고 명진 주지스님과 사전에 충분한 논의나 교감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 봉은사 측은 비롯한 대다수 불교계 인사들의 주장이다. 더욱이 현 자승 총무원장 체제는 ‘소통과 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지 겨우 4개월여밖에 되지 않았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그 내용과 절차가 모두 불교계 내부에서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격 추진돼 총무원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였다는 의혹을 자초한 것이다.

봉은사 직영화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때마침 정부 와 여권 고위 인사들이 총무원장을 예방한다며 수없이 자승 스님을 만나고 돌아갔다. 그런 자리에서 여권 핵심 인사들로부터 ‘총무원 간부직에 남아 있는 운동권 출신 승려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좌파 승려가 큰 사찰 주지를 맡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위의 압력성 주문을 하고 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종단 내부에 파다하게 나돌았다.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안건을 총무원이 전격 처리한 배경을 두고 처음부터 ‘정권 개입설’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의혹은 명진 스님이 현 정권 들어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신랄하게 이 대통령을 직접 비판해온 이력과 맞물리면서 설득력을 더했다.  그러다 급기야 명진 주지스님 입을 통해 외압의 실체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사자인 안 원내대표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그 주변 목격자들까지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자승 총무원장 체제는 원장 선거 운동 과정에서부터 현정권의 실세인 이상득 의원 계열 의원들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 등 친분을 나누는 장면이 목격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총무원과 안상수 원내대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봉은사 접수작전이 '권력에 비판적인 승려 손보기'차원에서 교감 아래 진행됐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물론 조계종 승려들 내부에서는 현재 정권개입설에 대해 차마 믿고 싶어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 불교계에 불어닥칠 후유증에 대한 걱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불교계 안에서는 자승 총무원장 체제가 진보와 보수의 연합 종권 성격이라는 데 애써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명진 스님과 같은 진보적 성향의 무자회(불교 민주화를 이끈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계보) 스님들도 자승 총무원장 체제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래서 총무원의 무리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이 정권 외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극복하려면 불교계 전체가 나서서 이 문제를  재론에 부쳐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하고 있다.

조계사의 한 스님은 “분명한 사실은 봉은사를 직영화한 것은 직영사찰의 본래 취지로 볼 때 맞지 않고, 그 선정 절차와 과정도 문제가 많았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총무원이 직영사찰을 지정하려면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찰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봉은사는 전혀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범적으로 포교활동을 잘하는 봉은사를 이렇게 총무원이 접수하면 종단의 예산은 끌어다 쓸 수 있겠지만 봉은사가 본래 수행해온 포교예산은 줄고, 그 사찰의 주지가 과연 포교에 헌신할 수 있겠느냐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조계종 관계자는 “소통을 표방한 자승 총무원장이 소통 없이 모든 일을 밀어붙이는 행태, 행정을 깜짝쇼 하듯 이끌어가는 행태가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종단의 정책 판단과 결정 과정에 현 총무원이 대단히 서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단 봉은사 직영사찰 추진만이 아니라 총무원 부원장제 도입 추진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분란을 불렀다고 한다.

명진 스님과 자승 총무원장은 30년 지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둘 사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불교계 내부 평이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두고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총무원장에게 질의한 이상 공은 이제 자승 총무원장에게 넘어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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