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70~80%에 이르는 북유럽의 경우, 노동자 계급은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고용 규모(특히 사회서비스 부문)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고 김소장은 생각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공기업은 좋은 직장일지는 몰라도 한국처럼 ‘선망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이나 청년 실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등은 아무리 노력하고 능력을 갖춰도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국내 일부 대기업 생산직의 경우 평균 연령이 40대이고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10년 후엔 50대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대변한다는 ‘민중’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예전의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상층 노동자’라는 것이 김소장의 주장이다.

스웨덴 볼보자동차 노동자가 완성차를 수송 트럭에 적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진보세력의 기본 전략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총단결해서” 자본의 몫(잉여)을 사회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며, 부자증세를 통해 재정을 확충해서 후한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김대호 소장은 이런 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자리(1인당 GDP의 2배 이상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는)를 창출할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문에서는 ‘과잉시장’이 아니라 ‘과소시장’이 문제이며 시장과 경쟁의 활성화로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가 한국을 오른쪽으로 왜곡했다면, 민주화운동은 왼쪽으로 왜곡시켰다. 양극화는 지구화와 시장의 확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과 노조의 담합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조직 노동자에겐 고용안정 등 기득권 유지가 핵심가치이다. 한편 실업자, 비정규직, 청년 세대 등에겐 제대로 된 경쟁 기회가 오히려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의 폐해만 강조하는) 진보세력은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

그래서 김대호 소장은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을 주장한다. 과잉시장 부문엔 좌파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 부문은 “적절한 규제, 감독, 약자보호 장치 없이 작동하는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시장” 하에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시간강사, 하청 중소기업, 무연고자, 청년 세대, 미래세대가 사는 세계이다. 대안은 “교육, 의료, 복지 등에서 사회 최소한(사회가 책임지는 최소한의 혜택)의 상향, 사회투자정책, 부동산과 일자리 등에서 공공 부문의 적극적 역할, 공공 부문의 고용, 임금 및 가격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경제-금융-노동 관련 세련된 규제” 등이다.

그러나 시장(경쟁)이 없어서, 폐해가 발생하는 과소시장 부문엔 우파적 대안, 즉 시장과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김대호 소장은 여기에 재벌이나 토건족, 부동산 투기꾼, 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비롯한 전통적인 보수세력 이외에 대기업 노동조합 등 진보세력의 일부까지 포함시킨다. 이에 필요한 개혁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엄단, 정․경․관․언․법 유착 차단, 기업지배구조 건전화, 직무 직능급과 고용 및 임금 유연성 도입, 철밥통 연성화. 관료와 이익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규제 철폐 등이다.

진보를 겨누는 세 손가락의 의미

지금까지 김대호 소장의 주장은 진보, 개혁, 민주를 자처하는 인사가 내놓은 것으로는 매우 파격적이다. 그중 일부는 이른바 우파 세력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공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소장은 영국 신노동당의 기존 노선이 세계적인 금융 탈규제, 자국의 강력한 금융 헤게모니라는 상황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영국은 제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날아갔지만 ‘금융 종주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사라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노동당 모델이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노동당의 현재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또한 김소장의 말 대로 진보세력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한다 해도 이른바 대기업 및 공공 부문의 ‘상층 노동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노동 유연화가 오히려 대기업 및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물론 노동자 전체의 처지를 더욱 곤궁하게 만들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김대호 소장은 시장을 ‘과잉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김대호 소장의 주장이 진보세력에게 조금 충격적인 형태지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폭력이라는 추상적인 구호가 진보진영에게 ‘악의 실체’로 군림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진보세력은 시장의 충격을 방어하는 데 선수였다. 그러나 앞으로 진보세력은 시장의 폭력을 잘 막는 선수인 동시에 시장을 잘 다루는 선수이어야 한다. 시대와 현실을 통탄하면서 손가락질할 때 집게손가락은 상대를 향하지만 엄지는 하늘을,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 지금은 정말로 자신을 향하고 있는 세 손가락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할 때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