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중 일곱 명이 “지지 정당은 민주당”이라고 했다. 같은 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열 명 중 네 명이 “민주당이 야당 구실을 못한다”고 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도 절반이 안 됐다. 민주당에 지지를 몰아주기는 하되, ‘야무지게 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 민심의 현주소다. 〈시사IN〉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공동 실시한 광주·전남·전북 여론조사 결과다. “”
 
단순히 정당 지지율로만 보면 호남의 민주당 지지는 여전히 공고하다(표 1). 광주 응답자의 70.5%, 전남의  77.6%, 전북의 70%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세 지역 모두에서 민주노동당에도 밀린 제3당이었고 지지율도 많아야 5.8%(전북)에 그쳤다.

호남이 민주당의 ‘영원한 텃밭’이라는 믿음은 착각인지도 모른다. 지난 5월17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은 민주당 지도부.


하지만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제구실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세 지역 모두 평가가 박했다. 광주 응답자의 42.4%, 전남의 32.9%, 전북의 40.4%가 ‘못한다’고 답해 정당 지지도와 큰 괴리를 보였다. 민주당 지지층으로만 좁혀 봐도 각각 31.6%(광주), 26%(전남), 35%(전북)가 부정 평가를 내렸다. 정당에 대한 지지가 업적 평가와 따로 노는 셈이다.

의석수 타령, 호남에서도 안 먹혀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민주당은 왜 이렇게 눈 밖에 났을까. 응답자 대부분은 ‘적은 의석수’보다도 ‘지도부 리더십’과 ‘의원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표 2). 민주당이 내세우는, 의석수에 한계가 있다는 논리는 호남에서조차 먹히지 않았다. 광주와 전북에서는 지도부 리더십 문제를, 전남에서는 의원의 자질 문제를 첫손에 꼽았다. 의석수를 거론한 응답은 세 지역 모두 15% 안팎에 머물렀다. 청와대가 잇따라 이슈를 선점해 나가면서 급격히 정국 주도권을 잃은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장외투쟁에만 골몰했다”와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라는 강·온 양쪽의 비판을 동시에 받는 모양새가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호남 여론은 민주당의 리더십에 물음표를 던졌다.

민주당 자체 역량만으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건 민주당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범야권 연대라는 큰 틀의 구상은 그래서 나온다. ‘반MB 연대’ ‘민주대연합’ ‘민생연대’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야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이후 펼쳐질 가능성이 있는 야권연대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물었다. 광주와 전남에서는 ‘헤쳐 모여 수준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응답이 ‘민주당 중심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응답보다 높았다(광주 45.5% 대 36.7%, 전남 42.9% 대 27.5%). 역시 현 민주당의 틀을 뛰어넘는 대안 정치세력에 대한 욕망이 읽힌다. 전북에서만 민주당 중심 연대를 지지한 목소리가 40.6%로, 새로운 대안세력을 요구한 의견(36.1%)보다 다소 높았다.

새로운 ‘판짜기’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최근 대두되는 ‘친노 신당’에 대한 평가는 기존 민주당만큼이나 박했다. 광주 응답자의 58.2%, 전남의 41.6%, 전북의 54%가 친노 신당이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하다는 응답은 각각 19.9%, 25.2%, 23.2%에 그쳤다. 친노 신당이 새롭다기보다는 참여정부 세력의 ‘재탕’처럼 보인다는 점, 친노 세력이 ‘영남 세력’이라는 이미지가 일정 부분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헤쳐 모여”는 바라지만, 어떤 세력이 중심이어야 할지에 대해 호남 민심은 판단을 유보하는 모양새다.

 

 

대선주자, 정동영 독주는 하는데

 

세력이 모호하다면 사람은 어떨까. ‘김대중’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이후, 호남 민심은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 〈시사IN〉과 리얼미터는 세 지역 모두에 ‘지지하는 대선주자’와 ‘호남의 대표 정치인’을, 각 지역에는 자기 지역의 대표 정치인을 물었다. 우선 차기 대선주자를 묻는 질문에는 정동영 의원이 선두로 나섰다. 정 의원은 광주·전남·전북에서 각각 28.6%, 28%, 43.4% 지지를 얻어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치적 본진’인 전북에서 강세가 두드러지지만, 광주와 전남에서는 ‘맹주’라고 할 만한 장악력은 아니다. 지난 4월 전주 재선거를 통해 국회에 복귀한 정 의원은 여전히 민주당 복당 문제가 풀리지 않아 운신 폭이 좁고, 당 지도부와 충돌하면서까지 4월 재선거 출마를 강행해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전국 단위 여론조사를 보면 정 의원은 한 자릿수 지지율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3~4위권에 머무르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계열 후보군은 전국 단위 조사에 견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차기 주자 1위를 독주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호남 조사에서는 광주와 전북에서 3위, 전남에서 5위를 차지했다. 다만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11.1% 지지로 전남에서 ‘깜짝 3위’를 기록했는데, 여수에서 32.2%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한 덕을 봤다(여수 외 지역에서는 모두 한 자릿수 지지에 머물렀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유치단장으로 나서 여수세계박람회를 유치한 효과가 정 대표에게 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호남 대표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표 3). 김대중 전 대톨여(DJ) 서거 이후의 직접 수혜자는 박 의원이 되는 모습이다. 박 의원은 광주에서 19.5%, 전남에서 28.7%, 전북에서 8.7% 지지를 얻었다. 광주에서는 정동영 의원과 공동 1위, 전남에서는 독보적 1위다. 호남 출신의 유력 대선주자인 정동영 의원마저 제치고 박 의원이 대표 정치인으로 꼽힌 것은 박 의원이 얻은 ‘DJ 후광 효과’와 정동영 의원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반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풀이된다(00쪽 상자 기사).

호남 대표 정치인, 박지원 급부상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세 지역 모두 1위를 했던 정동영 의원은 전남에서는 박 의원에 밀리고 광주에서는 동률에 그쳤다. 광주·전남·전북에서 각각 19.5%, 12.6%, 47.4% 지지율을 기록했다.

1년 반 가까이 야당 대표를 역임한 정세균 대표는 거의 존재감이 없다시피 했다. 같은 질문에 정 대표는 광주·전남·전북에서 각각 5.8%, 5.2%, 11.8% 지지만을 얻었다. 순위로 봐도 5위·6위·2위다. 지역구(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군)가 있는 전북에서만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 정도다. 민주당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던진 앞 설문조사와도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내심 차기 대선까지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알려진 정 대표는 전국구로 성장하기는커녕 출신 지역에서도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다고 확인되면서 ‘대표 이후’의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광주·전남·전북 각 지역의 대표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는 현직 광역단체장이 나란히 2위로 밀리는 모습이 나왔다. 국회의원보다 지역 주민과의 접촉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는 광역단체장이니만큼 다소 이례적이다. 광주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해 지난 7월 민주당에 복당한 강운태 의원이 박광태 현 시장을 여유 있게 제쳤다(34.6% 대 12.1%). 전남에서는 박지원 의원이 박준영 지사에 31.7% 대 12.3%로, 전북에서는 정동영 의원이 김완주 지사에 40.8% 대 25.2%로 앞섰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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